이슬람 탄생에 있어서 현재 역사학계에서, 전통적인 입장은 쿠란이나 하디스, 이슬람 문헌을 기본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정주의 견해는 이와는 다른데, 수정주의 견해에서는 쿠란, 하디스, 이슬람 역사 문헌을 대부분 1,2세기 뒤의 각색된 기록으로 봐서 신뢰도가 낮다고 본다.
수정주의 견해에서는 대신에 이슬람이 아닌, 비 이슬람 문헌, 비문, 고고학 등의 방법을 근거자료로 사용하며, 이러한 문헌을 전통적인 자료를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자료와 대립하는 것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물론, 학계의 일반론은 아직 전통적인 입장이며, 수정주의 견해는 1970년대에 소개되었지만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 수정주의 견해가 지나치게 과격하거나 비약적인 측면이 너무 많다고 보고 있다.
1) 수정주의 견해에 따른 이슬람의 탄생 배경
전통적인 견해에서 이슬람이 아라비아 반도의 헤자즈 지방(메카와 메디나)에서 탄생했다고 보는 것과는 달리, 수정주의 견해에서 이슬람의 탄생은 아라비아 반도의 북부 지방으로서, 페트라를 건설한 고대 나바테아 왕조나, 가산 왕조, 라흠 왕조 같은 아랍 왕조가 활약했던 지역이다.
수정주의 견해에서, 아라비아 북부 지방을 기원으로 비정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몇가지 이유로는, 1) 수정주의 견해에서는 쿠란에 사용된 언어가 헤자즈 지방 보다는 북부 아라비아에 가깝다고 본다. 2) 쿠란에서 묘사하는 지리적 묘사가 헤자즈 지방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아라비아 북서부나 레반트 지역에 가깝다. 몇몇은 구체적으로 쿠란에서 언급하는 묘사가 요르단의 페트라나, 예루살렘을 가리킨다고 지목하기도 한다. 3) 쿠란은 시리아 기독교의 아람어 자료를 참조하여 제작되었으며, 이 같은 문헌은 고립된 다신교 환경이 아닌 유대교와 기독교 텍스트가 잘 알려진 환경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본다.
이슬람 이전의 아랍 사회를 '다신교 지배적'으로 묘사하는 전통적인 입장과는 다르게, 수정주의 견해에서는 이슬람 이전의 아랍 사회는 이미 인근의 유대인이나, 기독교를 믿는 로마 제국이나 에티오피아의 악숨 제국,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사산 제국과의 장기적인 접촉으로 일신교적 사상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다신교는 존재했지만 크게 쇠퇴하고 있으며, 지배적인 종교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본다.
수정주의 견해에서는, 아랍인이 독립적인 세력으로 부상한 것은 이라클리오스 황제 시기에 있었던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 제국의 전쟁이었다고 본다. 20년이 넘는 전쟁은 두 제국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들었고, 양국에 복속되어 있던 아랍인이 군벌화 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수정주의 견해에서는 아랍인의 정복은 전통적인 견해와는 달리 '이슬람으로 단합되어 종교적으로 열광된 이슬람 제국의 정복'이 아닌, 단순히 '아랍인이나 유대인 등의 종족으로 구성된 유목민(사라센) 군벌의 확장'으로 보며, 이러한 유목민 군벌들의 종교적으로 크게 차별화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또한 레반트 지역과 이집트 지역,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등은 로마 정부에서 정통으로 지정하는 삼위일체파 보다는 단성론, 아리우스파 등 이단으로 박해받던 종파가 많이 있었으며, 이들이 로마 제국보다 자신들과 종교적으로 차이가 적거나 거의 없는 아랍 군벌의 정복을 별다른 저항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본다.
이는 전통적인 견해에서도 비슷하게 파악하고 있지만, 수정주의에서는 아랍 군벌의 정복이 있었던 초기에는 아랍 군벌에게 '종교적 독창성'이 거의 없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무슬림과 비 무슬림이 전혀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적 억압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슬람이 초기부터 유대인과 적대적이었다는 전통주의 견해와는 달리 이때까지 유대인은 '신자'의 일원으로 아랍 군벌들과 동료로 받아들여졌다고 본다.(이는 당대 문헌이 정복자들을 '사라센과 유대인의 연합'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에 근거)
수정주의 견해에서는 이 같은 정복 과정이 전통적인 관점과는 달리, 이슬람의 엄청난 '군사적 승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두 제국의 장기간에 걸친 전쟁의 결과로 나타난, 쇠퇴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본다. 즉, 수정주의 견해에서 아랍 군벌들은 일종의 '힘의 공백지'에 스며들어, 이미 중앙정부에 반항적이었던 현지인들의 '지지'를 받아내는 형태로 광대한 점령지를 얻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2) 수정주의 견해에서 무함마드와 라쉬둔 칼리프
전통적인 견해에서 무함마드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로 보고 있지만, 수정주의 견해의 무함마드는 군벌 지도자와는 달리 '중요하지 않은 종교적 인물'로 본다. 이슬람 전통에서 당시에는 많은 '아랍인 (거짓) 예언자'가 있었음이 언급되며, 무함마드는 여러 예언자들과 크게 다른 위치에 있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심지어 무함마드의 실존을 의심하는 경우까지 있다. 실존 의심설에서는 '무함마드'란, '축복받은 자'라는 의미로서 본래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쳐진 '별명'으로 본다. 몇몇 수정주의 견해에서는 초기에 아랍어로 표기된 대부분의 '무함마드'라는 문구조차 '아랍인 예언자 무함마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칭송하는 의미라고 본다.
수정주의 견해에서 라쉬둔 칼리프는 사실상 신화에 가깝다고 보며,모델이 된 인물은 존재했지만, 이들이 통치권을 실제로 행사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라쉬둔 칼리프 시대까지 극초기 이슬람의 역사는 구전 역사와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시대 순서를 가리지 않고 뒤섞였다고 보며, '하나의 이슬람 공동체'라는 이상을 과거의 역사에 투영한 것이라고 본다.
또한 일부는, 무함마드의 이미지 가운데 군사적인 부분에서는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린 압바스 혁명의 전설적인 지도자, '아부 무슬림'의 일화가 투영된 것이라고 본다. 특히, 쿠라이시 부족과 싸우는 영웅적인 군사적 습격 과정 같은 일화에서 아부 무슬림의 투영이 있었다고 본다.
3) 수정주의 견해에서 이슬람의 형성 과정
수정주의 견해에서, 비잔티움과 사산의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된 아랍 군벌들은 금새 내전을 벌이게 되는데, 이는 로마의 영향을 받은 서부 아랍과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동부 아랍의 갈등이었다고 본다.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하는 서아랍 군벌 우마이야는 이라크의 쿠파를 중심으로 하는 동아랍의 군벌 알리를 제거했으며, 우마이야 왕조는 이로서 안정을 찾게 된다.(거의 동시대에 써진 마론파 연대기에서 무아위야와 알리의 전투, '무아위야가 기도중인 알리를 죽였다'는 묘사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아랍 세계는 완전한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다마스쿠스의 우마이야 왕조 세력은 헤자즈의 이븐 주바이르, 이라크의 알 무크타르와 같은 세력과 이른바 '2차 이슬람 내전'을 벌여야 했다.
수정주의 견해에서 이 같은 잦은 이슬람 내전은, 실제로는 하나의 이슬람 공동체가 분열되어 벌어진 내전이 아니라 애초에 서로 관련 없는 별개의 기원과 정체성을 가졌던 아랍 군벌들의 '전국시대'를 묘사하는 것이라 본다. 즉, 이들이 기껏해봐야 서유럽에서 프랑크 왕국과 부르군트 왕국, 랑고바르드 왕국 정도의 사이였을 것이라 보는 것이다. 비슷한 언어와 풍습을 가지긴 했지만, 서로 공통된 집단이란 정체성은 가지지 못한 독립 왕국들이었다는 것이다.
수정주의 견해에서는 '아랍인'을 하나로 묶어서 '이슬람'이라는 정체성을 만들기 시작한 인물을, 우마이야 왕조의 '압드 알 말리크'로 보고 있다. 수정주의 견해에서는 압드 알 말리크가 예루살렘에 바위의 돔을 건설하고, 본래는 별개였던 여러 '종교적 전통'을 통합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본다. 예를 들어서, 몇몇 수정주의에서 현재의 메카는 본래는 이븐 주바이르 세력의 '성지'였으며, 압드 알 말리크는 단지 이븐 주바이르 세력을 복속하고 성지를 '흡수'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전설적인 라쉬둔 칼리프 우스만이 아닌, 압드 알 말리크의 서기들이 쿠란의 텍스트를 정리했다고 본다. 또한, 현재까지 전해지는 '이슬람 법'이 우마이야 왕조의 행정 관행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수정주의 견해에서 우마이야 왕조는 '후대 시선에서 보면 전혀 이슬람이 아니거나, 기껏해아 프로토 이슬람(Proto Islam)' 수준이었다고 본다. 현재와 동등한 수준의 정체성을 가진 '이슬람'이 완성된 것은 압바스 칼리프 시대로 소급하며, 우마이야를 몰아낸 압바스 왕조가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 하려는 목적으로 압바스 왕조의 혈통을 이름만 알려졌던 예언자 무함마드로 소급했으며, 무함마드라는 인물의 '역사적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고 본다. (수정주의자들은 압바스가 본래 우마이야 왕조의 한 갈래였을 것이라 본다.)
압바스 왕조 시기의 주석가와 역사가들은 확신하기 어려운 '전통'과 '상상', '추측', 혹은 순전한 프로파간다로서 100여년 전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으며, 그것이 바로 현대까지 내려오는 '전통적인 이슬람 역사'라는 것이 수정주의 견해 측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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