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과 복기

예술계 인재 초과공급의 폐해

세학 2021. 7. 26.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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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가 예술인 기본소득 정책을 도입한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니 이제 반 년 남은 것. 최대 2740만 유로(약 370억 원) 예산을 사용하는 이 정책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아일랜드 정부가 추산하는 문화예술 & 엔터테인먼트 종사자의 인구 규모다. 모든 장르를 통틀어, 창작 예술인은 물론이고 연예인, 방송인, 영화/연극/전시/방송 스태프 인력까지가 모두 예술인 기본소득 수혜 대상에 포함되는데, 그 인구는 모두 11,400명. 거기에 아일랜드 정부는 실업상태의 예술인력 600명을 더해 자국의 문화예술 및 엔터테인먼트 종사자 인구를 꼴랑 12,000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정도면 서울의 두어 개 구에 사는 예술인 인구보다 적은 수준일 것이다.

아일랜드의 전체 인구는 4백 9십만 명으로 한국과 비교해 열 배쯤 적다. 그런데 한국의 예술인 인구는 한국예총 회원만 해도 100만 명(예총 오피셜), 민예총 회원이 10만 명(MB정부 때 국정원 사찰보고서). 아마 이 숫자에서 거품을 걷어내면 실제로는 두 단체 합쳐도 30만~40만 명 내외일 것이다. 하지만 두 단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예술인도 꽤 많고, 일반적으로 국내에선 예술인력으로 구분하지 않는 방송연예인과 스태프 등등까지 합치면, 여전히 우리의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 인구는 아일랜드에 비해 최소 수십 배에서 최대 백 배 가까이 많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인구 대비 수 배에서 열 배 가량 차이다. 비단 아일랜드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어디와 비교해도 그렇다. 한국은 전체 인구에 비해 문화예술 종사자 인구가 기형적으로 많다. 정책에 이 점을 당연히 고려해 반영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최근 몇 년간 미술계 갑질이나 성추행 사건이 연발하면서 네덜란드의 미술 창작환경을 새로운 모델로 보는 경향이 대두됐다. 몇 달 전 르몽드 한국어판에 실린 김지연 평론가의 글도 그런 내용으로, 네덜란드의 창작 레지던시는 좋은 환경에서 안정적인 창작을 보장하는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하냐, 대충 이런 이야기다. 그 외에도 네덜란드와 비교하는 썰이 요즘 여기저기서 계속 나온다. 네덜란드는 공공지원 프로그램에 작가들을 공정하게 선발한다더라, 안정적이고, 외부 압력이 없고, 눈치 볼 필요도 없다더라, 돈 받고 놀면서 작업한다더라, 어쩌구 저쩌구... 그러면 그게 네덜란드는 예술행정이 한국보다 월등히 도덕적이고 깨끗한 아름다운 나라라서 그런 거냐? 혹은 대마초가 합법이라 그런 거냐? 그게 아니다. 창작 환경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른다는 게 내 생각이다.

국내에서 아무도 꺼내지 않는 얘길 해보자. 네덜란드의 공공 레지던시는 모두 49개 있다. 국공립이거나 공공의 예산지원을 받는 창작 레지던시만 49개. 민간기업이나 개인이 후원하는 레지던시도 있을 테니 실제론 그보다 조금 더 많을 수도 있다. 근데 미술대학은 11개 있다. 일반대학에 개설된 미대 말이다. 그리고 인스티튜트급 예술학교가 15개 있다. 인스티튜트를 한국식으로 말하면 전문대인데, 걔네는 전문대가 4년제다. 아무튼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첫째, 공공이 설립했거나 운영을 지원하는 레지던시가 미술대학 숫자보다 4배 이상 더 많다. 둘째, 네덜란드 전체 인구는 2천만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인데, 미대 11개로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미술 수요를 충족시킨다. 이 중 둘째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그 옆에 있는 나라, 독일도 살펴보자. 미대가 26개 있다. 독일에서 미대를 다니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그렇게 많을 리가 없는데?”라고 하였기에, 다시 한 번 들여다봤더니 회화과나 조각과가 없는 미대, 그러니까 순수미술은 없고 산업디자인이나 패션디자인 같은 학과만 있는 미대까지 합치면 26개가 맞는 것 같다. 정밀한 데이터가 아닐 수도 있지만 일단 26개라고 치자. 독일의 전체 인구는 대략 8천 3백만 명으로, 남북한 인구를 합친 것보다도 1천만 명 가까이 더 많다. 그리고 그만한 인구를 가진 존나 큰 나라의 미술 수요를 26개 미술대학 졸업자들이 채운다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은 미대가 100개를 가뿐히 넘는다. 진짜다. 한예종이나 삼성디자인스쿨이나 기타 등등 예술학교들을 빼고, 4년제 일반대학에 있는 미대만 해도 100개 넘는다. 수능 끝나고 입시원서를 가, 나, 다 군에 넣는데 그 중 한 군에 있는 학교 수만 세어봐도 네덜란드와 독일의 미대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이제 수요와 공급이라는 것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예비 창작자들이 매년 국내 미술시장에 끊임없이 초과공급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공급된다. 그에 비해 미술시장 규모는 독일 같은 나라에 비하면 훨씬 작다. 사회적 수요에 비해 공급 초과가 계속되기 때문에, 미술가들은 창작 레지던시를 비롯 여러가지 문화예술 공모사업을 두고 심각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공급이 수요를 크게 상회하는 구조는 한편으로는 짧은 시간 동안에 국내 창작자들의 작품 생산수준을 질적, 양적 모든 면에서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사실인즉 8,90년대에 활동하던 작가와 갓 데뷔한 신진작가의 작품을 비교하면 신진작가 쪽이 기량과 퀄리티 모두 뛰어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수요 부족은 곧 창작자의 경제적 빈곤으로 이어진다. 창작자들의 인간성이 무너지게끔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창작자들이 미술대학 출신이 아닌 일반인(특히 연예인)의 창작활동을 비웃거나 비난한다든지 혹은 누군가를 가리켜 예술을 모른다고 막말을 퍼붓는 모습을 얼마나 흔히 볼 수 있는가.

무엇보다도 공급초과는 예술행정 및 심사위원회가 권력화되어 온갖 부작용이 일어나는 문제와, 출신 학교나 지역 등 연고를 따지는 오래된 비리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내 진단은 그렇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월등히 많으므로, 창작자들의 작품이 자연스럽게 소비 유통되지 않는다. 시장이 공급을 충분히 받아들일 만큼 규모가 크지 않다. 그래서 창작자들은 거의 전적으로 공공지원 프로그램이나 각종 대회에 기대게 된다. 서울에서 조금만 밖으로 나가도 창작활동을 10년 이상 해오면서 변변한 전시 기회 한 번 얻지 못한 작가가 널렸다. 그런 경우 창작활동을 입증할 수 없으므로 예술인 자격증명을 할 수 없고 따라서 예술인 복지 시스템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다들 그나마 소비 시장이 있는 서울로 오려고 한다. 이런 구조가 행정을 갑으로 만든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이 구조는 미술뿐 아니라 연극, 문학, 무용 등도 매한가지일 것이고, 음악도 어느 정도는 그러하다. 그런데 과거에는 창작 인구 구조가 이 정도로 심각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일단 미술 분야에 한해서만 말한다면, 아직은 딱 잘라 말하기 힘든, 가설 단계인 내 의견인데, 대학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미술대학도 함께 커졌고, 그리하여 미술대학을 졸업한 창작자 인구가 늘어났다는 가설이다. 앞서 예로 든 아일랜드, 네덜란드, 독일은 미술대학 숫자가 적지만 전체 대학의 숫자도 적다. 반면에 한국은 대학 자체가 많고 진학률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다. 이렇게 된 과정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전두환 때 대학 정원을 급격히 늘렸고, 김영삼 때 신규 대학 설립을 크게 장려하였는데, 이후 IMF를 기점으로 대학진학률이 폭증했다.

대학의 확장 과정에서 미술대학도 같이 많아진 까닭은, 대학이라면 당연히 미대가 있어야 된다는 관념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과거 7,80년대만 해도 예를 들면 여성이 기계공학과를 나온다고 기계회사에 취직하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매우 낮았는데, 그럼에도 대학에 진학하려는 여성들은 계속 있었으므로, 그 수요를 주로 미술대학이 받았던 것이다. 이게 아마도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드물게 국내 미술대학에 두드러진 여초현상이 있는 이유일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대학이 많아지면서 미술대학도 많아졌는데, 아직 정확한 통계를 참조한 건 아니지만 일단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미술대학 진학률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첫빠따 세대가 IMF세대다. 학번으로 치자면 대충 97~01학번, 생년으로 치자면 77~81년생. 그렇다는 것은 이 첫빠따 세대가 이제 40대 초반이 되었다는 것이고, 다시 말해 본격적으로 왕성한 창작활동에 들어선 시기라는 것이다. 대개 미술작가의 인생과정을 보면 30대엔 돈에 쪼들리거나 이혼하느라 창작을 잘 못하고, 50대 중후반부터는 아파서 골골대거나 이혼하느라 창작을 잘 못한다. 그래서 대체로 40대가 피크다. 근데 사회적 수요, 시장의 수요가 이들이 지금 쏟아내는 미술품의 공급에 훨씬 못 미치니, 돈과 전시/유통경로를 쥔 예술행정이 점점 더 갑이 되고 또 그러한 공공지원 시스템에 이제야 이런저런 불만들이 쏟아지는 거다.

그리고 이 문제는 이제 시작 단계에 있는,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더욱 심각해질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많은 창작자들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그 다음 세대들이 앞으로도 계속 초과공급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은 지원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거나 예술인 복지제도를 웬만큼 강화해도 본질적인 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 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은 이런 문제를 제대로 짚고 따져보려고 하는 인간 자체가 없다. 한 사회에 필요한 예술가의 인구는 어느 정도가 적정한가? 라는 질문에 누구도 과학적인 데이터를 내놓을 수가 없으므로 연구자들이 이런 얘길 아예 안 하는 것인데, 나는 그저 다른 나라랑 비교해보니 상대적으로 우리가 엄청나게 가무에 능한 민족이었구나, 이런 취지로 일단 썰만 푸는 것이다.

아니 뭐 요즘 사람들이 얘기하듯 네덜란드 모델을 따르자면, 창작 레지던시를 미술대학의 4배 이상 만들면, 레지던시가 널널해지고, 적당한 생활을 유지하면서 즐겁게 창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고양시와 창동 딱 두 곳에 있는 국립 레지던시를 450개 정도로 늘리면 소비 유통은 그렇다 치고 창작 환경은 어느 정도 보장이 될 것이다. 그런 게 아니라면 극소수의 티오를 놓고 서류만으로 경쟁해야 하는 창작 지원에서부터 모두에게 쥐꼬리만한 돈을 주자는 예술인 기본소득까지, 요즘 사람들이 얘기하는 대부분의 정책 모두, 시행하지 않아도 쉽게 짐작 가능한 뚜렷한 한계가 있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느냐?
(이하 생략)


한스 애빙이 "네덜란드에서 자신의 예술 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 수준이 빈곤선 이하인 비율은 전체 예술가의 40% 정도"라며 "예술가의 94%는 노동자의 평균 수입 이하"라고 했답니다(연합뉴스 2014. 11.27). 정작 그가 지적한 '예술가 공급 과잉' 문제는 한국에서 그 동안 별로 이야기되지 않았는데, 그 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