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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의 역사에 대한 자료 모음(가라테 = 당수 = 공수 = 태권도 초기)

세학 2021. 11. 2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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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는 일제시대 일본에서 쇼토칸 가라테 배운 유학생 출신 사범들과 그에 관련된 5대 기관 가라테 도장들이 군 장성 출신 최홍희 중심으로 이름만 바꾼 급조된 무술이 맞음


애초에 태권도라고 이름 바꾼 이유가 언급 불가능한 분이 최홍희 장군 오도관 수하 가라테 시범단 시범을 보고 그걸 택견이라고 착각 한데서 착안해 이름을 태권도라고 한건데

 

가라테에 애착이 많던 원로들은 태권도로 이름 바꾸는거에 불만도 많았다고 함 그리고 왜 군인이 민간 도장들에 간섭하냐는 반응이었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강제로 통합된거고


그리고 풀컨택트 격투 방식으로 한때 최영의의 극진 가라테랑 통합 논의까지 진지하게 있었는데 대통령쪽에서 지금은 태권도가 자리잡는중이니 극진은 태권도 자리잡을때 까지는 들어오지 말아달라는 요청 받고 극진은 최영의 사망기 까지 안들어옴

69년쯤 최영의가 한국에 귀국하자 정치적 상황때문에 태권왕으로 소개된적도 있고

 

5대 기관중 최초로 가라테를 들여온 청도관 쪽에서 발차기가 발전되면서 지금은 많이 달라졌는데 그 발차기들이 오히려 일본 가라테에 일부 역수입이 되기도 했고
기본기 품새 도복 띠 시스템 전부 쇼토칸 가라테 시스템에서 도입된게 맞음
기본기 훈련방식도 동일하고 품새의 경우는 쇼토칸의 타이교쿠(태극)이라는 품새를 순서만 바꾼 재조립 수준임 창립때 시스템 재정립 하면서 택견을 도입해보려 했지만 형태랑 움직임 시스템등이 전혀 맞질 않아 쳐내 도입을 안하고

초창기때 자기가 택견 배웠다고 주장한 오도관 최홍희나 무덕관 황기 관장의 경우 택견을 제대로 배운적이 없다고 하거나 택견은 무술도 아니라는 식으로 부정을 했어서 택견은 태권도랑 관련이 없는게 확실함


최홍희 ITF 창시자
국기원 부위원장 이종우
미국 태권도 대부 이준구 모두 가라테 기반이라고 증언함
특히 이준구씨는 전부 가라테에서 온거라고 전통무술이라고 거짓말 하면 안된다고 대놓고 말함

 

그리고 원류인 가라테 역사를 설명하면

가라테는 16세기쯤 명나라 사람 진원빈에 의해 중국 남권이 오키나와에 유입돼 당수도가 되고

사쓰마 번의 침략에 대응해 무기금지령에 따른 맨손이나 농기구 같은걸로 일본에 대응하기 위해 발전한 무술이라고 알고있음

 

그러다 일제때 오키나와인 후나코시 기친이(일본 가라테의 아버지) 일본 본토로 넘어가면서 거기서 일본식 가라테인 쇼토칸 가라테가 탄생한거고

그 후나코시 기친한테 일본식 가라테를 배운게 한국에 청도관 송무관을 차린 이원국 노병직등이다

원랜 유술기도 있었지만 주로 타격기로 바뀜

 

그리고 가라테에서 태권도가 나왔다는 역사를 숨기려고 태권도 계에선 대몽항쟁 삼별초를 끌어들여 삼별초가 미개한 류큐를 개화시키고 수박희를 전수 했는데 그게 가라테고 그게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되돌아왔으며 가라테가 한국 고유의 무술이 부활한거라고 정신승리성 언플을 보이는중이다


태권도 역사 연도별 정리 ------------------------------------

1944년 9월 일본 중앙대 카라테부 (쇼토칸 카라테/송도관) 출신의 이원국에 의해 청도관 개관
1945년 11월 황기에 의해 무덕관 개관
1946년 3월 일본 동양척식대학 카라테부 출신의 전장섭에 의해 연무관 개관
1946년 중국무술과 쇼토칸 카라테를 거쳐 일본대학교 카라테도우부 주장 출신인 윤병인이 창무관 개관
1947년 일본대학교 카라테부 출신의 노병직에 의해 송도관 개관
1950년 무덕관 황기관장이 명칭개정 시도 (무덕관만 공수도, 당수도에서 화수도로 개정)
1952년 일본 중앙대학 카라테부 출신의 최홍희에 의해 오도관 개관
1954년 '태권도'명칭 오도관, 청도관에서 사용
1955년 '명칭제정위원회'발족 ('태권도' 명칭 합의)
1955년 4월 11일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태권도' 명칭 인가 / 채택
1959년 3월 ‘태권도'라는 명칭으로 최초의 해외 시범,대한 태권도 협회 창립 (초대 회장 최홍희)
1961년 9월 16일 대한 태수도 협회로 개칭
1963년 통일틀 완성
1962년 6월 20일 대한체육회 경기단체로 가입승인
1962년 12월 15일 대한태수도협회 초대회장 채명신 추대
1963년 2월 23일 대한체육회 경기단체로 가입승인
1963년 10월 24일 제 44회 전국체육대회 시범종목
1964년 9월 3일 제 45회 전국체육대회 정식종목
1965년 1월 15일 최홍희 태수도 협회장
1965년 8월 5일 대한태권도협회로 재개칭
1966년 10월 28일 대통령기 쟁탈 전국단체대항태권도 대회
1968년 6월 16일 주한 외국인 개인선수권대회
1969년 대한태권도 협회 우리말 용어 채택
1970년 10월 24일 전국국민학교 태권도 개인선수권대회
1971년 1월 17일 김운용 7대 회장 (7~14대, 19~20대 회장)
1971년 국기로 인정
1972년 박정희대통령과의 불화로 최홍희 캐나다로 망명
1972년 8월 7일 재단법인 국기원 설립
1974년 10월 18일 제 1회 WTF 아시아 태권도 선수권대회 (서울/10개국)
1975년 10월 8일 GAISF 국제경기연맹 가입
1976년 4월 19일 국제군인체육회(C.I.S.M) 정식 경기종목 채택
1979년 김운용 WTF 총재 세계 비 올림픽종목연합회 회장 선임
1980년 7월 19일 IOC 정식 승인 단체
1986년 9월 제 10회 아시안게임 정식종목 채택
1987년 10월 7일 제 1회 여자세계선수권대회 (스페인)
1988년 제 24회 서울올림픽 시범경기 종목


 

 

태권도는 가라데를 급조하여 만든 무술이다.

태권도는 가라데를 급조하여 만든 무술이다. https://blog.naver.com/zemo0001/221304818437 많은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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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중국권법 > 오키나와 가라테 > 일본 본토에 전수 > 일제강점기 > 일본에 유학갔던 한국인의 가라테 수련 > 귀국 후 가라테 전파 > 가라테에서 태권도로 명칭 변경 > 역사 세탁 및 룰 개정 > 현재의 태권도

당수 = 공수 = 가라테 = 태권도 초기

 

오키나와 가라테

> 일본 본토 가라테(후니코시 기친)

> 한국 당수도(후니코시 기친 > 이원국 청무관, 노병직 송무관) 

>창무관, 무덕관

> 청무관 출신 최홍희 > 오도관 개관

> 최홍희 > 이승만 앞에서 당수도 시범 > 태권도라 칭함

> 최홍희 > 박정희 유신 반대 > 캐나다에 망명 및 ITF 태권도 보급 > 북한에 보급

 

 박정희에 의해 협회, 문파 통합

> 태수도 창설

> 용어 우리말 전환

> 태권도로 이름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