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과 복기

그토록 두려워하던 이의 두려움을 보았습니다(펌)

세학 2023. 1. 23.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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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두려워하던 이의 두려움을 보았습니다(펌)

 

저는 어렸을 적 그가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아무리 좋은 분위기였어도 말 한마디 잘못하면 폭력을 당하는 행태.

그것이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그 분은 제 주변 또래 친구의 그분들보다 평균적으로 한두세대쯤 윗세대였습니다.

제 친구들에게서는 저처럼 맞았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항상 제가 나쁜 아이라 어쩔 수 없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운동을 하고, 그의 나이가 들며 육체적 폭력은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그의 폭력은 다른 형태로 발현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분의 그런 행동에는 일정부분 수긍이 갑니다.

합리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 분에게는, 주변사람에게 듣고 배운 자신의 역할이란 그런 것이라고 배웠을 겁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못난 존재입니다.

아무리 눈 앞에 새로운 학문과 학식과 지혜와 지식이, 문화가 있어도 그것을 담아내지 못합니다.

특히 자신이 배우고 익혀온 것과 배치되는 새로운 것을 마주했을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제, 저는 그 분의 말에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절대군주를 지향했던, 절대군주에서 점점 내려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 켠에서는 놓지 않았던 그 분의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자신이 코골이를 하니 상대방이 싫어할 것 같았다는 그 말.

그래서 서로의 거리를 멀리 두었다는 그 말.

저는 그 말에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압제자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저와 같은, 저와 같은 심성여린 사람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나로 인해 상대방이 불편해할 것을 알고, 그로 인한 트러블이 싫어 스스로 춥고, 덥고, 외로운 외곽으로 홀로 떠난다니.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압제자, 절대군주, 대부를 지향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마음 여린 한 인간의 두려움. 그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한 마디로 그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최근 그 같은 변화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가 저를 대하는 태도에서 일부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시대는 사람을 퇴보하게 만듭니다. 

스스로 퇴보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라는 이름의 각종 인플레이션이 멈춰있는 인간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무한히 달리지 않으면, 걷기 시작하면 스러져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는 동시대 최고의 엘리트였지만, 그 시대라는 이름의 인플레이션을 헷지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평범한, 아니 부족한 일반인이지만, 하필 그가 전공했던 분야인 경제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존심이 상한 모양입니다. 그것을 종종 아니 여러번 느꼈습니다.

 

최근 심리학 강의를 자주 듣고 있는데, 폭력성의 크기는 곧 두려움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합니다.

폭력성이란 단순 폭력성도 있지만 두려움의 반대급부이기도 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 폭력성과 유사한 그의 폭력성에서 저는 처음으로 명백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생에 내내 다양한 방식의 두려움을 느끼게 하던, 다양한 방식의 두려움을 사방으로 표출했던 그에게서 저는 문득 연민을 느꼈습니다.

광분하는 곰과 같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그는, 이제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상처가 두려워 언제나 비명을 지르며 분노를 사방으로 내지르는 토끼와 같이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토끼란 제 자신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그에게서 똑같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연민을 느꼈습니다.

그에게서.

저의 모습이 보여서 그랬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자신의 상처를 가리기 위한, 회피하기 위한, 두려움을 지우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 본능적인 수단이 바로 다양한 방식의 폭력이라니.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