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과 복기

크리스마스 날, 교회 목사에게 발로 채여 쫓겨난 부랑자 이야기

세학 2023. 3. 8.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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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날, 교회 목사에게 발로 채여 쫓겨난 부랑자 이야기

너무도 추운 겨울 날이었습니다
눈보라가 치는 사거리 앞에서 저는 오갈 데 없는, 외투 한 벌 없는 거지꼴의 부랑자였습니다

갈 곳 없이 밤길을 거닐다 어쩔 수 없이 얼마 전 중학교 동창이 몰래 알려준 한 교회의 옥탑방을 향했습니다
교회에 몰래 들어가 옥탑방에서 추위를 피하는 일이 부끄럽고 잘못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겨울 칼바람이 살을 베어내고, 얼어붙은 숨결이 손바닥 한 줌 조차 녹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집을 나온 고등학생에게는 무언가 선택을 할만한 정신적, 육체적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런 도덕적 결정을 내릴 여유가 단 한 줌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디든 비집고 숨어 들어가 이 죽을 듯한 눈보라와 칼바람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조심스레 올라가는 나선형의 계단이 얼마나 어지러웠는지 모릅니다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계단을 올라가던 도중 몇 번을 휘청거렸는지 모릅니다
꽁꽁 얼어붙은 몸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꽁꽁 얼어붙은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찌저찌 무가지 사랑방 신문 몇 쪼가리를 덮고 잠을 청할 수 있었는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내 인생에 나중이라는 것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만약 나중이라는 것이 있다면 언젠가 보은하겠노라고 마음 속 깊이 몇 번이고 반복해 되뇌며 손을 녹였습니다
저는 잠시 후,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깨게 되었습니다
누가 눈 앞에 후뢰시를 직광으로 비춘 것과 같은 강렬한 빛이 눈을 가득 채워 잠을 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곤 누군가의 발길질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야! 야! 너 누구야! 일어나!"
제가 눈을 뜨지 못하자 그는 점점 세게 발길질을 하며 욕을 섞기 시작했습니다
어렵게 눈을 뜨자 제 눈 앞에는 양복을 입은 한 중년의 남성 한 명과 여러 명의 청년들이 뒤에 서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억지로 잠에서 막 깬 터라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습니다
다만 뒤에 있는 청년들이 들고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용품들, 그리고 앞에 있는 중년의 남성을 목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저는 상황을 대충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너무도 추워 몰래 교회 다락방에 숨어들어간 그 날, 그 날은 바로 크리스마스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부랑자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욕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에 욕지꺼리가 넘쳐날 때 즈음 저는 뒤늦게야 정신을 추스리고 그 추운 겨울 날 시뻘개져 땀이 뻘뻘 나는 얼굴을 애써 수그린 채 황급히 방을 나섰습니다

 

저는 세 시간 정도를 눈을 맞으며 발걸음을 돌려 옆 동네로 향했습니다
길을 걷는 동안에도 저를 경멸하는 듯 한 그들의 목소리가 계속 언저리에서 들려오는 듯 해 황망한 정신을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정처없이 걷던 발걸음이 멈춘 곳은 한 한적한 아파트 인근의 상가단지였습니다
그 주변 어디에도 사람도, 불빛도 보이지 않았기에 저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상가의 3층 계단을 올라 계단에 앉아 잠을 청했습니다
온 몸이 덜덜 떨려 잠을 청할 수 없었지만 날이 밝을 때 즈음 되어서 저는 마침내 지쳐 잠들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크리스마스는 그런 날로 기억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