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견

2023 유가 80달러 재하향돌파, 그리고 유가 120달러론에 대한 생각

세학 2023. 4. 20.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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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유가 80달러 재하향돌파, 그리고 유가 120달러론에 대한 생각

 

 요즈음 트레이딩이나 경제에 대해서는 글을 거의 쓰지 않았다. 공부하면 할수록 그 벽은 너무나도 높고, 세상을 이루는 법칙과 변수들은 셀 수조차도 없이 많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해하고자 하는 수준은 세밀하지 않고, 대략적인 부분만을 이해하면 족하기 때문에 현재 내 수준에서 추가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자 하는 욕구는 없다. 또한 단기적인 관점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욕구들도 모두 버렸기 때문에 이제 남은 것은 큰 맥락에서의 방향성, 그리고 그 원리들 뿐이다.

 

 

내가 주변사람들에게 원유에 숏배팅을 하라고 마구 이야기하고 다녔던 시기가 아마도 저 첫번째 동그라미 시점일 것이다. 유가가 120달러선을 충분히 돌파하지 못하는 순간 나는 뭔가 때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추가적으로 확대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원유 인버스 레버리지를 들고 있던 내가 더 큰 고민을 하기 시작한 시기는 90~100달러 시기였다. 당시 상황은 리오프닝, 전략비축유 방출 지속(보충론), 공급부족론, 워렌버핏 유가 120달러론, EIA유가 120~200달러론 등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논지와 이론에 심취했고, 내 개인 견해는 장기적으로 수요 부족, 리세션 방향으로 나아감에 따라 유가가 대상승할 수는 없다는 견해였으나 워렌퍼핏, EIA,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말이 일리없지는 않다고 생각해 매수와 매도를 반복하며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 시기는 근래 내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였다.

 

그리고 2023년. 지금도 그 때와 유사한 환경이 벌어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뱅크런 > 리세션론으로 순식간에 70달러를 하향돌파했던 것과 달리 OPEC+의 감산선언과 함께 다시금 한방에 80달러를 초과했다. 그리고 원자재 대상승론자들은 다시금 유가 120~200달러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정확히 그 때와 유사한 논리, 유사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떤 포지션을 잡아야 하는가 고민이 되었다. 물론 다음 리세션 시기까지 입 다물고 조용히 무지션으로 있어도 되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나름 2016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정치이념으로부터 파생되어 독학으로, 혹은 대학까지 억지 진학해가며 공부를 했다. 이념에 편향되지 않기 위해 나름 무진 애를 쓰며 공부를 했다. 그 공부들에서 내가 느낀 것은 결국 정치이념이든, 공부든, 투자든간에 포지션에 대한 신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정치이념이란 종교이념. 즉 신앙과 같다고 주장했다. 투자 역시 일종의 신앙과 다를 바 없지 않나 이런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모 전문가가, 워렌버핏이, 글로벌 최고 에너지 관련기관 EIA가 유가 상승론을 주장했으니 그 말을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니깟게 뭐라고. 이런 말들을 하곤 하지만, 그 때 유가 100달러선에서 워렌버핏의 주장을 따라 배팅을 했다면 WTI가 65달러까지 갔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나는 워렌버핏의 뷰가 맞다던가, 혹은 틀리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세상에 나와있는 수많은 논지들은 상호 배격되는 것이고 그를 주장하는 이들 모두 대단한 실적과 학문적,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기에 단순히 어떤 사람의 성취만으로 그 주장을 신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결국 결정은 스스로 내리는 것이고, 어떤 방향성에 대한 신앙을 가지는 수밖에 없다. 그 신앙이 물론 불합리하고,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그 잘못된 신앙이 개개인을 파멸로까지 이끌 수 있다. 굳이 빌황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잘못된 신앙이 파멸에 이르게 한 사례는 자산시장에서 모래알의 수 많큼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어떤 신앙적 포지션을 잡을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신앙적 포지셔닝 없이는 포지션을 유지할 수 없다. 개방되고 객관적 사고가 현재 단기적 변동성을 100%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리란 확신이 없고, 또한 그러한 사례 역시 극히 적다. 특히 내 자신이 그런 수준의 역사적 천재라고 절대 생각할 수 없다.

 

결국 단기적인 추세를 이해할 수 없다면 수%~수십% 정도의 손실이 날 수도 있는 리스크를 감안하고서 포지션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다. 내 모자란 실력과 이해도를 가지고 행했던 10년 넘는 투자를 복기해봤을 때 나의 단기적 대응은 언제나, 항상 장기적 보유포지션보다 수익이 작았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사회에 극소수만이 존재하는 천재들과 같은 반열에 서고 싶어서 나름대로 애써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이렇게 쓸데없이 주절주절 쓰고 있는거냐 하면, 단기적 대응이 불가능한 사람이라면, 혹은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장기적 방향성만을 바라본 채 다소 비효율적인 포지션을 유지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자신의 장기적 전망 자체가 틀려버릴 경우는 괴멸적인 데미지를 입을 수 있다. 다만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한다. 현재 장기적 전망 자체에 대해 확신이 없다면 애초에 투자를 하지 않거나 장기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포트폴리오는 짜지 말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원자재 시장과 달리 주식시장은 장기 우상향이고, 최대 수익률을 지향하지만 않는다면 그 손실은 거의 대부분 장기적으로 복구된다.

 

리세션+저유가론이 맞을지, 120~200달러론이 맞을지 누가 알겠는가. 다만 자신이 생각하는 논리에 따라 자신의 말을 증명하고자 하는 한 걸음을 반복해 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