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과 복기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 1억 초

세학 2022. 10. 17. 01:00
반응형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 1억 초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차디찬 거실 방바닥에 누워 첫사랑의 향기에 취해 다리를 동동거리고 있던 나를 엄마가 불렀다

엄마의 호출에 따라 나는 백화점으로 따라나섰다

엄마는 물건을 사지도 않으면서 이리저리 나를 이끌고 느릿한 걸음으로 돌아다니기만 했다

어두침침하고 회색빛 뿐인 우리 집과는 전혀 다른 백화점에 압도된 나는 무엇 하나 사달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고, 그저 신기한 눈으로 엄마의 다리를 쫓아다닐 뿐이었다

 

엄마는 모르는 친구들이 가득 모여 놀고 있는 게임기 판매대쪽으로 나를 이끌고서 말했다

"엄마 어디 좀 갔다 올게. 아들 사랑해~" 라고

엄마의 갑작스럽고 황급한 발걸음에 나는 놀라

"또 나 두고 친구들 만나고 오려고 그런거지! 엄마 미워!" 라며 땡깡을 부렸는데

저 멀리 사람들 사이로 흐려져가던 엄마는 고개를 떨꾼 채 조용히 다가와 내 얼굴을 부비며 말 없이 꼭 안아주었다

평소 어두운 표정, 말 수 적은 엄마였기에 별다른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1억 초 동안 참고 있을 테니까, 1억 초 뒤에 와야 해!"

1억이라는 숫자는 당시 내가 알던 가장 큰 숫자였다. 당시 나는 1억 초라는 시간으로써 나름 엄마를 배려하려 했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그대로 일어나 다시 사람들 사이로 흐릿해져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시간을 세기 시작했다

신기하고 휘황찬란한 백화점 안에서는 시간이 흐르는 것을 알 수 없었지만, 밤이 깊고, 직원들에 의해 차디찬 밖으로 쫓겨나왔을 즈음 1억 초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문득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물 한 살이 된 지금, 1억 초가 몇 번이고 반복해 흘러간 지금도 아직 엄마는 그 흐릿해진 군중 사이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요즘도 가끔은 그 날의 엄마가 그 날의 모습 그대로 꿈속에 나타나곤 한다

몇 번이고 되뇌었던 대로 그 날의 1억초를 번복하며 엄마를 쫓아 울부짖는다

"엄마 내가 잘못했어. 1억 초는 너무 긴 시간이야. 내가 몰랐어. 가지 마"

하지만 꿈 속의 엄마가 발길을 멈추는 일은 없었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께서 덮어주신 이불은 눈물로 젖어 부르튼다

만약 그 때 엄마에게 1억 초 기다린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엄마는 돌아와줬을까

엄마가 마지막으로 나를 꼭 안아줬을 때, 만약 내가 엄마를 붙잡아 매달리기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를 하루 만 번씩 되뇌여보지만

아마.

엄마가 돌아올 일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입영 통지서가 날아온 그 날도, 끝끝내 외면하던 입영통지서를 들고 버스에 오른 오늘도

엄마를 기다리던 그 1억 초를 기억하며 눈물 흘린다

 


 

인터넷에서 본 썰에 눈물 펑펑 흘리다 조금 각색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