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의 인문학.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해보기
1. 우리 사회의 가치와 통념.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생산, 축적한 자본. 그리고 생산성으로 평가받습니다. 조금 저급한 단어로 말하자면 돈이지요. 우리는 그러한 자본에서 벗어나 도덕/인간성 등 비금전적인 가치로써 또한 평가받고자 하지만 출산율, 기부, 선의, 증오, 범죄, 테러, 편협 등 그러한 선의나 도덕, 인간성, 인간 패턴마저 최종적으로는 금전적 영향력으로 환산되어 평가되기에 큰 맥락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어떠한 이는 재산을 축적하지 않은 인사의 사회 영향력을 빗대며 자본과 인간 가치의 분리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사실이 아닙니다. 인간의 영향력은 곧 사회의 흐름을 변화시키며 그 흐름이라는 힘은 곧 금전적 영향력으로 환산됩니다. 예를 들어 유명 연예인, 교수, 기타 인사들의 정치성향들은 국민들의 지지와 사고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곧 국가의 방향성을 바꾸고, 국가의 방향성 전환은 곧 편향과 자본의 이동을 이끌어냅니다. 이 같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자본으로 관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금전으로 우리 개개인이 평가받는 주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그 주박에서 진정으로 벗어나고자 한다면 우리 스스로 사회적 굴레에서 벗어나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 역시 자본이 축적되지 않은 대부분의 개개인에게는 불가능한 일일테지만 말입니다.
2. 사회의 통념과 그 비판.
시대는 변하고 인간의 문화는 변화합니다. 지금의 대중들이 과거의 인간들을 비판하는 맥락에는 과거의 격투기 챔피언인 표도르와 현재의 격투기 챔피언인 미오치치를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중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훈련 환경과 기술 수준, 시장의 규모 등 큰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인물과 현재의 인물을 동시대상의 인물로 보며 비교하곤 합니다. 이 같은 문화와 기준의 변화를 충분히 감안하지 않고 상대방을 평가하거나 비판하는 태도가 바로 세대간의 격차, 세대간의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구세대와 신세대는 비단 나이로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집단과 개개인의 문화 사고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환경은 변해왔습니다. 절대빈곤은 장기적으로 꾸준히 감소했고, 자본의 축적보다는 소비를 중시하는 문화로 점차 변해가고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우 서양의 개인주의를 열망하며 점차 탈조직적인 문화를 염원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반대로 타인을 통제하고, 타인의 도덕성과 행동을 끝없이 평가하고 비판하는 동양적 문화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괴리 속에서 저는 항상 문화의 변화를 생각하게 합니다.
문화와 도덕적 기준은 시대에 따라 항상 변화하여 갑니다. 예를 들면 어린 남자아이의 성기를 손으로 훑으며 후루룩 하는 소리는 내는 장난은 과거, 단순히 성인이 어린 아이에게 하는 장난으로써 받아들여졌지만, 현 시대에 달해서는 맹렬한 도덕적 비판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성범죄로 문화적/도덕적 전환이 일어났으며, 엘리베이터를 내리는 사람이 먼저, 타는 사람이 나중에 움직이는 문화는 과거 보편적이지 않았으나 요즈음 세대에서는 매우 보편적인 문화가 되었습니다. 게이나 레즈 등 성소수자는 과거 정신병이라 일컬을정도로 매우 비판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으나, 현재에 이르러서는 굳이 PC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그들을 납득하는 견해가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과거 교육자들의 뇌물수수는 매우 흔한 일이었으나, 요즈음 시대에서는 지극히 간접적인 방식의 뇌물수수가 있을 뿐, 양지에서의 뇌물수수는 매우 크게 감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성범죄 역시 과거 무죄추정의 원칙이 당연하다고 여겨졌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유죄추정의 원칙이 당연시되며 또한 그러한 판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한 문화적 충돌이 현대에 일어나는 것을 이번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사태에서 역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성범죄 무죄추정의 원칙과, 현재의 성범죄 유죄추정의 원칙이 대립하였습니다. 물론 현재의 성범죄 유죄추정의 원칙이 선적용되어야 함이 논리적으로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그 지지자들은 과거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주장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문화적/도덕적 기준 변화는 사회 구성원들의 강제적인 수용을 낳게 되고, 자신이 소속된 집단이나 이해의 속도로 인하여 구세대의 문화기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근래에 들어 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3. 사회 속에서의 ‘나’ 는 어떠한 존재인가
저는 어릴적부터 질문이 참 많았던 사람입니다. 어릴적에는 꼬리의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친형에게 두들겨 맞기도 했고, 학창시절에는 수업시간 끊임없는 질문과 논증으로 선생님들을 곤란하게 하였으며, 대학생활에 이르러서도 교수님들의 수업내용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잘못된 학습자료, 통계자료 등에 대한 근거를 요구하며 자기 스스로 고난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으며 진리를 이루는 점은 반드시 존재하지만, 사회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그것은 한마디로 정의하거나 어떠한 연관관계가 명백히 분석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인문학의 딜레마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이러한 사고 속에서 저는 10대부터 불가피한 노동생활을 시작했고, 인과관계의 불명확함과 도덕적, 문화적 기준의 불명확함. 같은 것으로 인해 끊임없는 혼란을 겪어왔습니다.
그러한 혼란 속에서 저는 30대가 되었습니다. 고무줄과 같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 문화적 도덕적 기준과 집단에 따라 변화하는 기준들로 인해 발생하였던 혼란을 저는 지금 이렇게 해소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이해할 순 없으며, 일관된 기준을 종용할 수 없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이론적으로는 10대부터 갖고 있었으나 이것을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된 것은 30대가 된 이후가 되었습니다. 이 같은 가치관으로 인해 과거의 혼란은 상당부분 해소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 인과관계에 대한 질문이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사회 자체를 혼란스럽고 유동적인 존재로 이해하되,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맥락과 인과관계는 데이터를 통해 추론할 수 있으며, 저는 그 증명방법의 학습을 위해 이곳에 진학한 것입니다.
4. 행복이란 무엇인가
개개인의 행복은 그 기준이 참으로 다양합니다. 어떤 이는 자본의 축적을. 어떤 이는 생산성의 증가를. 어떤 이는 사회적 지위를. 어떤 이는 인간관계의 축적을. 어떤 이는 폭력의 행사를. 참으로 다양한 기준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 자본의 축적과 지식의 축적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본과 지식의 축적은 노동으로부터 저를 자유롭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저는 노동으로부터의 자유가, 그 여유가 삶의 자본적인 가치 외적인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저는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1. 신언구언(愼言懼言) : 말을 삼가고 두려워하라
저는 먼저 이 구절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평소에는 말이 없지만, 관심 분야(정치, 경제) 부문이라면 갑자기 말이 많아지며, 상대방의 잘못된 지식을 모두 비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서른 둘이라는 나이에 맞지 않게, 시시콜콜한 개인적인 사생활을 타인에게 쉽게 이야기하여 추후 사회적 관계에서 상대에게 원망을 사거나, 얕잡아 보이는 등의 사례가 많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약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써 율곡의 말을 삼가고 두려워하라 라는 말에 대해 공감이 됩니다. 저는 최근 일년 새 말을 극도로 줄였습니다. 맞서 싸워야 할 때가 아니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이 틀린 말을 하여도,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사회적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본래 타인에게 솔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 관계를 만드는 시금석이라 생각했으나 이는 틀린 사실이었습니다. 제 약점을 숨기고, 남이 배아플만한 이야기를 숨기고, 흔히 돌아다니는 풍문을 읊는 것을 삼가야 했던 것입니다.
2. 일을 할 때는 하는 일에 집중하고, 쉬고 있을 때 생각이 일어나면 반드시 그 생각이 무엇
인가 살피고 헤아린다. 뜬 구름과 같은 생각을 끊어 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저는 이 구절에도 느끼는 바가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이 많은 타입입니다. 무언가 하나의 관심사가 생기면 다른 행동을 하는 와중에도 그 생각을 끊지 못해 일상이나 노동에 지장을 주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나이가 조금씩 먹어가면서부터 항상 떠올라 흩어져다니는 상념을 잠시 잊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는 감정 조절과도 같이 연계가 되어 쓸데없는 일에 장기적으로 분노하거나, 타인을 증오하는 일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일을 할 때에도 그러한 상념들이 없어지니 일의 실수를 범하는 일이 줄어들고 매끄럽게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에 밤낮으로 힘쓰되, 절대로 빨리 그 효과를 얻으려 해서는 안된
다.
저는 과거 조급한 마음에 장기적인 계획을 망친 적이 많았습니다. 학창시절 단 한 번의 96점으로 사학자가 되는 길을 포기했었고, 성악으로 추천을 받았을 때에도 부모님께 지원을 단 한번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포기했었습니다. 그 이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저는 일시적인 패배감에 젖어 포기를 하는 것을 반복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제 인생이 되었습니다. 제가 패배감에 젖어 포기를 하지 않았던 유일한 것은 경제공부, 주식 공부였고 다행히 그 둘은 유일한 제 자랑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공부는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주식 공부, 경제 공부 역시 하늘을 쳐다보면, 평생동안 단 10%조차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것을 공부함으로 인해 내 자신에 어떠한 발전이 있을지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계속해 나아가려 합니다. 과거 조급증에 빠져 불과 몇 번의 패배로 계속해 포기만을 지속했던 것과 달리, 주식과 경제는 제 정체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실수와 패배를 반복해가며 경험과 학습을 반복하다 보면, 10년쯤 뒤에는 지금보다는 나은 투자자가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4. 기쁨9喜), 성냄(怒), 슬픔(哀), 즐거움(樂), 두려움(懼), 사랑(愛), 욕(欲)의 7가지 감정에 치우치지 않도록 절제해야 한다.
저는 과거 지극히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슬픔과 기쁨, 화, 두려움, 욕망 등을 모두 드러내었습니다. 특히 화와 기쁨은 하루에도 몇 번씩 상단과 하단을 번갈아 두드렸으며 이와 같은 성미는 저 자신을 장기적으로 망가뜨려 갔습니다. 인생은 장기전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화와 기쁨은 제 하루를 충실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그것은 지속되기 어려웠고 화와 기쁨이 천정과 바닥을 뚫은 뒤에는 언제가 깊은 무력감이 자리했습니다. 그러나 평생 변할 것 같지 않던 저도, 나이를 먹어가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보통 사람에 비하면 감정적일지 모르나, 과거에 비하면 많이 수그러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쉽게 화를 내지 않고 쉽게 기쁨에 매몰되지 않는 성향이 제 공부와 일상생활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5. 입용덕(立容德) : 서 있는 모습에 덕이 있어야 한다. 늠름하게 똑바로 서고 한쪽으로 기대거나 비스듬 하게 서지 않아야 한다.
저는 어릴 적, 이러한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본질적인 능력만 갖춰지면 겉보기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인정받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 경험해본 세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데는 겉모습도 참으로 중요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타인과 대화하기 이전, 겉모습으로부터 정보를 습득하고 그 초반에 대개 상대방에 대한 결론을 내려버리는 성향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 같은 측면에서 저는 많은 실수를 저질러왔고 개선하려 노력은 하고 있지만, 실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여전히 자린고비 성향을 가져 좋은 옷을 사지 못하고, 좋은 차를 사지 못하고, 좋은 화장품을 사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돈을 쓰지 않더라도 남에게 보일 수 있는 자세라던가, 눈빛 등은 교정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6. 의사문(疑思問) : 의문이 일어나면 물어서 밝히겠다고 생각한다. 마음속에 의심이 생겨나면 반드시먼저 깨달음을 얻을 사람에게 물어야지 모르는 것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제가 가장 자신하는 가치관 중 하나입니다. 제게 유일한 깊은 장점이 있다면, 바로 진리에 대한 깊은 탐구심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이 가르쳐 준대로 그대로 학습합니다. 정치인이 가르친대로, 교수님이 가르친대로, 선생님이 가르친대로, 상사가 가르친대로. 물론 그러한 방식은 빠른 습득, 빠른 적응에 유리한 방식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는 모든 의구심이 드는 논제들을 해체하여 기초부터 새로이 데이터를 쌓아나갑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부동산의 폭등 현상은 이상하다. 라는 논제가 있다면, 대한민국의 부동산 상승률과 글로벌 부동산 상승률을 비교하고, 대한민국 평균 부동산 상승률과 수도권 부동산 상승률을 비교하고, 다시금 대한민국 수도권과 글로벌 수도권 상승률을 비교하고, 유동성과 자산의 헷지관계, 인구수의 증감, 가구수의 증감 등 세부적인 항목을 모조리 뜯어 분석합니다. 저는 이러한 특이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23.01.10 예전에 썼던 글 옮기는 중... 다시 보니 너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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