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팔이) 단편소설 이카루스 리뷰
이 소설은 대략 2016~2018년 즈음에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주식과 거시경제에 대한 공부를 막 본격적으로 시작했었고 여러가지 경험과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썼던 소설이다. 당시 나름대로는 수없이 복기를 하고 퇴고를 하며 노력했지만 지금 다시본 소설은 정말이지 허술하기 그지없다. 물론 아무런 경험 없는 일반인이 좋을 소설을 낼 리 없지만 그 소설을 쓰는 당시, 내 스스로는 너무나도 흥미롭고 흥분되었던 기억이 난다. 인터넷 커뮤니티 몇 곳에 올려 좋은 평가도를 몇 받기도 했고, 지금은 돌아가신 마광수님 홈페이지에 올려 좋은 소설이라는 빈말을 듣고, 빤히 알면서도 너무 기뻐했던 기억도 난다. 그러다가 이후 문창과를 나온 듯한 어떤 사람에게 심한 평가를 받고 매우 실망하여 그 이후로는 소설을 거의 쓰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책을 좋아했다. 남자라면 책 일천권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믿고 전교에서 소문날 정도로 책을 읽었다. 물론 지나고 나서 보니 모두 헛된 책읽기였음을 알게 되었지만, 어찌되었든 그런 다독의 역사는 나로 하여금 직접 글을 써보고 싶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그 감정의 연쇄가 이런 습작이 되거나 혹은 블로그에 다양한 글을 쓰거나 하는 활동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지금도 다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들곤 한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어휘력과 감성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어휘력은 책을 많이 읽고 다양한 독서를 통해 길러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다양한 분야의 책을 가장 많이 읽었을 때는 초~중학교 시절이고, 고등학교 이후로 내 어휘력은 악화 일로만을 걷고 있음을 느낀다. 글 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요즈음 읽는 글이 학창시절 읽던 글보다 더 많을지 모르겠으나 지금 보는 글들은 대개 경제, 정치, 문화 관련한 연구자료, 뉴스, 커뮤니티 글이 대다수이다. 그렇기에 관심분야에 대한 어휘력은 다소 있을지 모르겠으나 다양한 분야, 소설에서 사용되는 감성적인 분야에 대한 어휘력은 여전히 악화 일변도를 걷고 있다. 오죽하면 예전에 썼던 인용구가 생각나지 않아 종종 검색해 그것을 다시 확인하곤 한다.
다음으로 감성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메말라가고 있음을 느낀다.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었듯이 나 역시 학창시절에는 매우 감성의 폭이 넓고 다양했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겪으며, 사회생활을 겪으며 변동성 높은 감정의 폭은 내 삶을 제약한다는 점을 느끼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무미건조하게 넘어가야 할 모든 일들 하나하나에 나는 흥분하고, 감동하고, 분노하고, 눈물흘렸다. 그런 감정의 기복은 나를 힘들게 만들 뿐이었고, 일상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스스로를 말려 비틀며 무한히 리바이벌되는 옛 기억들을 스스로 훼손시키기에 이르렀다. 다만 그것이 내 삶에, 미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기에 납득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언제든 소설을 다시 쓰고 싶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 하지만 그런 글을 쓰기에는 현재 내 역량이나 심적 여유가 너무나도 얕다.
언젠가 좋은 글을 쓸만한 여유가 생기는 그런 삶을 살게 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하며, 또한 지향한다.
[이카루스]
제 1부 목차
1장 - 한강
2장 - 투자의 타당성과 강제성
3장 - 이카루스
[제 1부 1장 - 한강]
내 시야에 무엇이 보이는고 하니 쓸쓸한 회색빛 보도블럭과 그 앞에 부끄럼도 모르고 상하로 반복하여 제 몸을 흔들고 있는 차량들, 그리고 잔잔히 흐르는 검은 빛 강의 물결만이 유동하고 있는 풍경이다.
저어기 강변 산책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 겨울임에도 불구 라인이 훤히 드러나는 야시시한 옷을 입고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운동하는 처자, 팔짱을 끼고 걷는 연인들, 이 한강의 풍경과 함께한 소주 한 잔의 취정을 화폭에 쏟아내고 있는 묘한 남자, 운동선수인 듯 연신 주먹과 발을 뻗고, 지르며 투기 연습을 하는 사람까지. 나는 그들 모두를 그윽한 시선으로 하나씩, 하나씩 바라보았다. 이 한강변이라는 아름다운 산책로에서 모두들 자기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만큼의 여유와 행복을 충분히 만끽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중 오직 나만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을 그만두고 내가 향해야만 할 장소를 향해 시선을 옮긴다. 왠지 모르게 눈이 따끔거려 자꾸만 껌뻑이게 된다. 하염없이 흐르는 저 검은 빛의 강. 날개가 꺾여 더 이상 창공을 비상할 수 없게 된 벌레들이 남은 제 여생을 폐기처분한 장소. 그 수가 도합 몇 만이 넘어간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이 기억난다. 나도 그들과 같은 수많은 망령들 중 하나가 되고 마는걸까? 어쩌다 내가 이 지경이 되도록 내몰리게 되었을까? 시름의 강 고퀴토스와 같은 저 강을 바라보며 곰곰히 기억을 되짚어본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회에서 말하는 소위 '성공한 사람'이었다. 지방 전남 광주 태생이라는 디메리트를 유전자 깊숙한 곳에 안고 태어났지만, 나름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던 덕택에, 쉬이 고려대 경영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이어서 바로 대학원에 진학. 남들은 휴학도 하고, 고배를 마시기도 한다지만, 나름 특출난 머리를 갖고 있던 나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중기 투자에 대한 훌륭한 분석이라는 찬사를 받은 나는 교수로부터 추천을 받아 미래 국내 최고의 증권사가 될 미래에셋에 취업하게 되었다. 교수로부터 학계로의 진출에 대한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정중히 사의를 표했다. 먼지 쌓인 책 냄새를 풍기는 비루한 인생따위는 살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 입사한지 불과 1년. 나는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다. 본래 증권 영업부의 서포트 업무를 하던 것에 이어 펀드 매니저 일을 맡게 된 것이다. 내가 알던 인사과 선배로부터는 내가 '정보수집이 뛰어나고, 유려한 거래스킬을 가진 직원' 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들었다.
내가 신입 매니저로써 참여하게 된 펀드는 미래에셋 디스커버리. 알 만한 사람치고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처음 200억 소규모로 론칭을 시작해 후일 1만 2천억으로 몸집을 불린 공룡 펀드. 최근 3년간 수익률은 227.36% 연평균 수익률로 따져도 78.78% 연 수익률 20%만 나와 줘도 영웅이 되는 현 코스피 장 상황에서 이러한 실적을 낸 나와 팀원들, 미래에셋 디스커버리 펀드는 대한민국 증권사 사상 최대 신화창조의 주역이 되었다.
플루타크 영웅전이나 그리스 신화를 보았는가? 그들 신화 창조의 주역이 된 영웅들에게는 모두 달콤한 보상이 주어졌다. 미녀. 막대한 부. 권력. 사회적인 명성.
당시 대한민국 증시에서 최대의 수익률을 이끌어 낸 펀드매니저 중 일원인 나에게도 역시 그와 같은 보상이 이루어졌다. 금전적인 보상은 내가 이끌어 낸 실적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신화적인 수익률을 확정지은 젊은 펀드매니저로써 출연한 증권 방송에서 얻은 유명세는 대한민국 상위 1%들의 금전을 끌어 모으는 매개체가 되었다. 나의 개인계좌에 모인 그들의 비자금은 어느덧 수백의 단위를 넘어 2700에 가까운 잔고를 유지하게 되었다. 2700. 일반 개인이 운용하기에는 꽤나 부담스러운 금액일 것이다. 어느 한 분야에 이미 깊이 뿌리를 내린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 누구든 이 거대한 규모에 의한 부담에 눌려 혼자 벼랑에 발을 내딛고 말 금액이다. 허나 그들과 다르게 1조가 넘는 공룡펀드를 상시 운영하는 노하우를 지니고 있는 나에게는 충분하고도 넘칠만한 자신이 있었다.
나의 당시 수익률은 2년간 84%. 자본금 2700억.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비용과 수수료, 세금 등을 빼고 남은 순수익이 약 2천억. 그 중 1푼인 20억이 나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다. 10억만 가지고 있어도 부자소리 듣는 시골 똥촌에서 상경해 취업한지 10 년 즈음 되어 손에 떨어진 20억. 갑작스레 밀려들어오기 시작한 대한 파도와도 같은 재화와 기회에, 나는 그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토록 탐욕스럽고도 게걸스럽게 제 자신만의 욕망의 항아리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 즈음의 나의 하루 일과는 이러했다. 이른 아침, 졸린 눈을 부비며 증권사에 출근해 장이 끝날 때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치열한 전쟁을 벌인다. 가끔 거래를 후배에게 맡겨둔 채 정보 획득을 위한 순방을 돌거나 사람을 만난다. 그러다가 8시 즈음이 되면 그 어떠한 일이 남아 있더라도, 만사를 제쳐두고 퇴근을 해 룸싸롱이나 요정, 터키탕으로 직행을 하는 것이다. 매일같이 여자를 부르고, 그들의 보드라운 살결에 파묻혀 풍류와 윤락을 즐겼다. 학창시절에는 가난한 집안 탓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문화였으나 이제 와서야 무슨 돈이 부족 하겠는가. 고급스런 양주와 향긋한 와인들이 코끝을 감미로이 간질이고, 그것을 마시면 마실수록 앞으로 안게 될 여성을 더욱 보드랍게 만들어 준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가끔 여자 친구 한 번 사귀지 못하였던 우울했던 학생시절이 생각날 때면 더욱 더 가학적이고, 고압적인 자세로써 그네들에게 열등감을 풀어내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케이텍. 코스닥의 케이테크. 줄여서 케이텍. 그래 이름마저 잊어버릴 뻔 했어. 질펀한 일상이 1년쯤 지속되었을까? 질리지도 않고 계속해 즐겨나가던 나의 아름다운 일상에 파문을 일으킨 바로 그 회사. 망할. 케이텍은 당시 국군 장비 자주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국산 전차 K-9의 독점적 생산을 수주 받은 회사였다. 회사 규모 자체는 영세했으나 군부 및 정계와의 커넥션을 기반으로 수주를 따낸 이 회사의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쳤다. 원초 1200원 근방에 불과했던 싸구려 주식이 기존의 10배 이상인 14000원에 달하고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텍의 수주 계약이 해지되었다는 공시가 올라왔다. 수주에 의한 미래수익만을 보고 투자했던 자금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며 거품은 일시에 사라지며 자취를 감추었다. 연일 지속된 하한가는 1만 4천원짜리 주식을 기존 1200원보다 못한 700원짜리 동전주로 만들고 말았다.
그로부터 1주 쯤 후. 사무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장을 주시하고 있던 나에게 연락이 왔다. 자주 거래를 하던 단골 정보통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케이텍의 수주 해지 공지가 거짓이라는 것. 최대주주인 회장측이 주가 조정을 통해 자본금을 불리려 하는 움직임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테마주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는다는 원칙을 강력히 고수하고 있었기에 마저 끝까지 듣기도 전에 대충 말을 끊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관계 없는 반대편 세상의 일이었던 것이다.
다만 이후 그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멤도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매일 밤, 날이 새도록 지속되는 윤락과 음주. 그것에 소모되는 막대한 금전. 또한 쓸데없이 넓고 호화로운 오피스텔의 임대료. 기타 이런저런 명목으로 줄줄 새어나가는 잔고, 최근 몇 달간 국내 증시의 정체로 인한 개인자산운용 실적의 부진. 그로 인해 자금을 다시 회수하겠다는 몇몇 부호들. 그러한 몇 가지 악재들이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카루스]
[제 1부 2장 - 투자의 타당성과 강제성]
케이텍은 잊어도 그 놈은 잊지 못한다. 모든 것의 근원. 내 몰락의 근원. 만약 지금 당장 내 눈 앞에 그 녀석을 데려다 놓는다면, 나는 당장으로 하여금 내 주머니 속 핏빛으로 녹슨 커터칼의 녹이 벗겨져 광이 날 때까지 그놈의 기름진 배때지를 쑤셔버리고 말 것이다.
녀석은 내 첫 개인 자산운용 고객이었다.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 그딴 녀석이 내 고객이 되었기 때문에 내 운수가 이렇게 풀린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미신 따위는 믿지 않지만, 그렇잖은가. 식당 아즈매과 수다를 떨다 보면, 으레 한 번쯤 들려오는 이야기. 첫 고객이 카드면, 그날 장사는 전부 카드로 들어오고, 첫 고객이 진상이면, 그 날은 진상이 많은 날이 되는 것 같다고.
그는 내가 방송에 출연한 후 얼마 되지 않은 날, 갑작스레 사무실로 불쑥 찾아와서는 말 몇 마디 나누지도 않고 나의 개인계좌에 1500억의 거금을 일시에 위탁하였던 사람이다. 개발 전의 강남에서 대대로 농사나 지어 벌어먹던 그 자식은 부동산 버블 당시 운 좋게 기회를 잡았고, 대대로 물려 온 가문의 토지를 모조리 팔아넘겨, 제 그릇에 맞지도 않은 큰 돈을 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다. 한 번 돈 맛을 보고 나니 그 욕심을 멈출 수 없었는지 수익률이 나올만한 구석만 있다면 그 어디에든지 투자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완전한 백지 상태의 무지렁이였기 때문에 최소 적금 수익률 이상의 만족할만한 수익률조차 쉬이 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서로 죽이 잘 맞았다. 나는 그에게 연 평균 60% 정도의 수익률을 내 주었고, 그는 두둑히 차오르는 제 욕심 주머니에 흡족해 하며, 기본 수수료 외 추가적인 수당을 얼마든지 챙겨주었다. 그래. 그 때까지만 해도 그 자식은 메번 나를 은인이라니, 나의 제갈량이라니 뭐니 하는 말을 연신 늘어놓으며 나를 기껍게 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세계 경기가 점차 경색되어가기 시작하면서 수익률도 마찬가지로 하락을 거듭했다. 나는 위험한 장 상황에 맞춰 안전운행을 하였지만, 그래도 하락 일관세인 코스피의 상황을 감안 했을때는 그럭저럭 좋은 수익률을 끌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계속된 폭식에 한계치까지 부풀어버린 욕심쟁이놈의 위통은, 그것만으로 만족되지 않는 듯 자꾸만 신경질적으로 나를 압박해 대었다.
"이봐. 나는 네가 돈을 잘 불려줄것 같아서 돈을 맡겼다구. 너 방송에도 나와서 잘난 듯이 이러니 저러니 하며 떠들었잖아. 그런데 요즘 이게 뭐야? 3달간 수익률이 7%? 10%도 안되잖아? 내가 모르는 줄 알지? 증권사 수익률 대회에서 우승한 애들만 봐도 한 달 만에 몇 백 퍼센트도 낸다며? 지난 번 신문에서 봤어 임마. 내가 언제까지나 너 하나만 바라보며 너한테 속아줄 사람인 줄 알지? 누굴 바보 멍청이로 알아? 넌 대체 뭐야? 펀드 매니저씩이나 한다는 놈이 대학 졸업도 안한 개인투자 꼬맹이들보다 못한 수익률을 내고 있잖아 이게! 그래. 차라리 이럴 거면, 이 돈 전부 빼서 그 꼬맹이들에게 맡길까? 그럴까? 그래야겠지? 자꾸 이런 식이면. 그렇지? 그게 싫으면 알아서 좀 잘 하란 말이야 좀. 응? 자꾸 이런 식이면 정말로 조만간 모조리 회수해야지 싶으니까. 안 그래?"
“저급한 놈. 무식한 놈. 멍청한 놈. 어디 시장바닥에 널부러진 그지 발싸개같은 놈아 반말 하지 마라. 수익률 대회에서는 사이버 머니만을 가지고 가상 투자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리스크를 전혀 감안하지 않고 수익성이 높은 선물에 몰빵투자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가능 한거야"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무식한 놈이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현재 수익은 착실히 축적하고 있고, 장 상황도 나쁘지 않습니다. 조만간 매매를 해 현금화 할 예정..."
"시끄러워! 남자라면 변명을 하지 말란 말이야! 너 여자냐? 계집애냐? 고추 달린 놈이 어디서 계집애같이 변명이야! 응? 응?"
나는 계속해 밀려 들어오는 굴욕감을 애써 외면하며, 웃는 얼굴로 응대했다. 제 스스로 재태크도 할 줄 모르는 무식한 졸부 놈이 자꾸만 악담을 해 대니, 부아가 치솟아 올라 패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다만... 나는 그러한 과격한 행동을 하기에는 다소 현명한 사람이었다. 나는 소위 '성공한 사람' 으로써 사회의 룰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역류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분노를 당연히 삼켜 넘기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중선아- 네가 아직 어려서 모르는 모양인데- 자꾸 이런 식이면 조만간 나도 무슨 수를 강구할 테니까. 그렇게 알어. 알았지? 응?"
"예. 죄송합니다. 조만간 실적을 내 보이겠습니다"
이러한 녀석의 통보에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던 나는, 표정과는 달리 속으로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녀석이 빼갈 수 있는 금액은 전체 자본금의 1/2를 넘는 수준. 하지만 그 영향력은 50% 정도가 아니다. 만약 그 금액이 일시에 빠져나간다면, 남은 잔고가 가지고 있는 신뢰성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분명 다른 투자자들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말 것이고, 그런 식으로 투자자가 하나씩 빠져나가게 되는 날이면 달에 3000 이상 빠져나가는 생활비를 봉급 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될 처지가 되고 만다.
나는 그 다음 날. 아직 새하얀 안개가 걷히기 이전부터 사무실로 달려나가, 평소 어쩔 수 없이 스쳐지나가는 순간 마저 혐오스럽게 생각하던 그 카테고리에 접속해 정보를 긁어 모으기 시작했다.. '테마주는 손대지 않는다는 원칙' 을 지키고서는 짧은 기간 내 그가 만족할만한 수익(수십퍼센트에 달하는)을 낼 수는 없었다. 선물이나 옵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다소 부족한 내가, 단기간 내 그의 물욕을 만족시킬만한 결과를 내려면 '테마주' 또는 '급등주' 를 통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중 특히 얼마 전 정보가 들어왔던 케이텍의 이슈에 대해서는 꽤나 꼼꼼히 조사했다. 전에 나에게 정보를 건내주려 했던 그 정보통에게 여자까지 안겨주면서 다시금 세세한 정보를 받았고, 케이텍 관계자, 증권사 기타 정보통들,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하-아- 카하. 하하하"
과거를 회상하던 나의 앙다문 입술을 찢고 스스로를 조롱하는 웃음과 비련이 함께 비져나온다.
"하흐...허흐으..."
내가 수집한 모든 고급 정보들은 나에게 투자가 합당치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실무 관계자에 의하면 당시 진행되고 있던 시설 확충은 수요를 생각지 않은 무리수이며, 사내 분위기 또한 좋지 않다는 소문이 들렸다. 정보통들에 의하면 정계와의 커넥션이 그리 두껍지 않아 쉽게 끊어질 수 있다 말하고 있었으며 부채비율이 2000%퍼센트에 달한 재무상태 이외에도 우회상장 등 갖가지 요인들이 모조리 기준 미달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케이텍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 이런 저런 불안한 조건들은 전부 던져두고, 어떻게든, 무슨 수를 쓰든 간에 케이텍에서 대한민국 군 K-9전차의 독점 생산을 재차 정식 확정짓기만 하면 떨어지게 될 거대한 수익. 케이텍의 주가가 전 고가까지만 간다고 해도 주당 1만 3천 300원이 떨어진다. 그것을 몇 번의 거래를 통해 수익을 내면 2천 퍼센트 이상의 수익이 떨어진다. 그 중 1%인 20%가 내 몫. 20%에서 법인세 등 부대비용과 정보료를 비싸게 쳐주더라도 15%가량이 남는다. 단지 이번 거래만을 통해 내 주머니에 떨어지는 것이 400억 가량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신화를 다시금 달성하게 된다면야 대한민국 사회 주류 인사들의 비자금들 또한 나에게 모조리 몰려들 터. 그 재수 없는 졸부 놈의 투자금 1500억이 푼돈이 되는 순간, 녀석에게 온갖 조롱을 퍼붓고 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 자식을 벼랑 끝까지 밀어내 궁둥이를 차버릴 생각이었다.
그 일만 잘 된다면, 평생을 눈치 보지 않고 살며 여자 수십 명을 끼고서 옛 백제의 의자왕처럼 살아도 될 만한, 그야말로 막대한 기회와 함께 주류 사회로의 편입이 곧장인 것이다. 그 누군들 눈이 벌개지지 않을까. 분명 원초 당시 형편에 의해 원치 않게 들어선 전장이기는 하였지만, 그 전장의 광대함과 화려함에 어느새 시야를 모조리 뺴앗기고 말았다.
예상된 결과. 예상하고 싶지 않았던 결과. 패배를 모르던 나의 증권인생에 있어 첫 패주. 그리고 단박에 잘려버린 날개. 정계와의 커넥션이 무너져버린 케이텍. 군에서의 수주 철회. 악재의 연속. 상장폐지의 위기. 700원짜리 주식은 더더욱 떨어져 350원이 되었고, 조급해진 나는 그에 맞춰 물타기를 하고 말았다. 원칙적으로는 확실한 하락세가 느껴질 때이니 아쉬우나마 손절을 하고, 잊어버린 후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을 터인데, 어찌 그렇게 하고 말았을까. 그저 설거지를 통해 조금이라도 손실을 덜어보자 하는 의도가 상처를 더욱 벌려 놓고 말았다.
나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주가는 장중 단 한 번도 반등하지 않고 쭉쭉 떨어져, 이윽고 102원이 되었다. 나는 그 시점이 되어서야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수익률은 -72%. 알런지 모르겠다. 지금은 자산운용 위탁에 대한 손실의 리스크를 '투자자'가 부담하는 판례가 나왔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투자를 위탁받아 거래를 하는 사람이 거래에서 큰 손실을 보게 된다면. 그 사람은 '사기꾼'이 되는 시대였다.
매도가 완료되고, 멍한 시선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던 내게 문득 떠오른 사실. 사기죄로 감빵에 가야 한다는 사실. 경제사범으로 몇 년 썪고 난 후에 사회로 복귀한다 해도, 내 일생 다시는 금융이나 증권계통 자리에 앉을 수 없게 된다는 사실. 내가 왜? 그토록 신명나게 일하고, 즐기던 내 인생이, 성공된 인생이, 아름다운 일상들이 이제는 하늘 높이 떠오른 물거품처럼 사라져 다시는 잡을 수 없게 된다니.
[이카루스]
[제 1부 3장 - 이카루스]
"후-우-"
그때를 기점으로 내가 피땀 흘려 쌓아온 모든 것이 일거에 무너지고 말았다. 나의 전 재산에 대한 가압류와 동시에 손실액 약 2200억에 대한 민, 형사 송장이 날아왔고, 어떤 놈인가가 그 듣기 좋은 '공익제보' 라는 놈을 통해 나를 회사에서 쫓아내었다. 물론 그 사유는 억울하게도, 실제, 존재하지도 않은 사실이었다. 사내 자산 부정 운용? 내 사생활이 제법 지저분했던 것은 나 자신도 인정하는 일이었으나, 적어도 일에 있어서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열정적이고, 클린 했던 나였다. 너무도 억울한 심정에 상사의 데스크를 두들기며 항의도 해 보기도 하였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큰 죄인이 되어버린 나의 의견은 상부에 제대로 전해지지도 않은 채 주변에서 나를 향해 내뿜어오는 살기어린 눈총에 몰려 내쫓기듯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겨우 그 정도였다면 죽기 살기로 다시 시작해, 온갖 밑바닥 일을 겪어가며 재기의 기반을 쌓을 일이지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와서야 생각이 난다. 대학생 시절에 읽던 누군가의 수필에 이렇게 쓰여 있었던가?
"불행은 말이야. 숙변과 같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쌓여있다가 한꺼번에 쑤욱-하고 쏟아지지. 똥이 위에서 밑으로 후두둑 쏟아지는데, 그것이 또 나중엔 꽉 막히기까지 해. 거기서 끝이야? 아니야. 왜냐하면 위에서 계속해 떨어지는 똥들이 밑바닥의 불행을 더욱 공고히 만들어 주거든. 끝이 없어. 그래. 불행이란 모름지기 바로 그런 것이야.
"똥 같은 것들 같으니..."
내가 가지고 있던 계좌. 어떠한 공작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가압류가 잠깐 풀린 사이에 나의 인감이나 비밀번호, 카드도 필요 없이 전액이 인출되어 나갔다.
납득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 배경을 생각하면, 또한 납득할만한 일이었다.
나에 대한 소문은 또 어떻게 그리 넓게도 퍼져버렸는지 그 흔한 금융, 증권계 말단직 재취업은 꽉 닫힌 문처럼 그 길이 막혀 있었고, 본래 합법적이어야만 할 나의 개인파산과 개인회생 신청 또한 서류에서부터 기각. 나에게 투자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그 수많은 사람들 또한 연기처럼 온데 간데 없어졌으며, TV출연신청 역시 전무. 게다가 고향 부모님 명의로 박아놓았던 30억 가량의 부동산도 부모님과 함께 증발한 상태였다. 이제는 더 이상 돈이 나올만한 구석은 단 한곳도 없고, 빼돌려놓은 자산도 없으니 나에게는 이 외의 다른 길이 없음이 자명하지 않은가.
그 이후로 1년. 나는 이곳저곳을 떠돌며 노숙생활을 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오피스텔은 경매에 걸려 계약해지 되었고, 그나마 그들이 호의로써 남겨두었다고 생각되는 통장의 잔고는 12원. 법적 조치가 얼마나 신속한지, 순식간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출금, 계좌이체 같은 사소한 금융거래도 할 수 없었다. 직장 동료를 넘어 친구라 여겼던 사람들은 나를 인간쓰레기 취급하고 쫓아냈으며 매일같이 출근표를 찍던 요정과 룸싸롱의 아가씨들 마저도 하룻밤 매서운 바람을 피하게 해주는 온정을 베풀지는 않았다.
어느 날은 지하철 바닥에서, 어느 날은 공원 벤치에서, 또 어느 날은 불빛이 꺼져가는 빌딩에 몰래 숨어들어가 지친 심신을 누였다. 봄과 가을, 겨울밤에는 입이 돌아가고, 여름에는 매번 쏟아지는 비와 날아드는 날벌레들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텅 빈 위장을 채우기 위해 어쩌다 한 번씩 노가다나 택배 일당 일을 뛰기도 했으나 화이트칼라 출신에 방탕한 생활을 즐기던 나에게는 감당 못할 노역이었다. 하루 일하면 일주일을 끙끙 앓게 되니 그것도 못할 짓이었다.
증권질 말고는 할 줄 아는 일도 없고, 다른 일을 해보려 해도 사기건의 형사 소송이 걸려 있어 하다 못해 달방에라도 어디 마음 놓고 거주하며 일 할 수도 없었다.
자괴감에 절어 괴로움으로 1분 1초를 지내던 어느날 밤. 나는 문득 괴롭지 않게 사는 법을 알게 되었다. 다만 그것을 위한 돈이 없을 뿐이었다. 교차로 넘어 하나씩 있는 그 흔한 편의점에라도 가서 그것을 사기라도 할 테면, 1200원이라는 돈이 있어야 하는데, 자존심이 상한다는 그 꼴같잖은 이유로 동냥조차 하지 않은 나의 주머니에는 100원짜리 동전 한 개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몇 날 며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가, 항상 내 옆 자리에서 새벽녘에 잠을 청하는 노숙자 동료의 소줏병을 몰래 훔쳐들고 내달렸다. 한참을 내달리다 어딘지 모를 아파트 정자에 넘어지듯 주저앉아 한 입에 털어버린 소주 한 병은 고통 뿐인 내 심중을 어찌 그리도 편하게 만들어 주었는지!
이후, 나는 하루 한 번. 잠이 깨면 항상 그 짓을 하러 돌아다녔다. 가끔 잠들지 않고 보초를 선 그들에게 끌려가 온갖 모욕을 들어처먹고, 피투성이가 되어 콘크리트 바닥을 뒹굴기도 하였으나 그 짓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당시의 나에게는 저질스러운 욕설을 쳐먹고, 입술이 부르터지도록 두들겨 맞는 것보다, 지금의 망가진 나 자신의 현실을 인지하는 1분 1초 그 하나하나가 더욱 고통스러웠기 떄문이다.
싸구려 저급 알콜로 목을 축이며 매번 의식적으로 필름이 끊길 떄까지 마셨다. 그렇게 잠들고, 훔치고 마시거나 두들겨 맞는 1년을 보내고서야 오늘은 발걸음을 돌려 지금 이 자리에 섰다.
손에 들린 소주 병뚜껑을 비틀어 깐다. 우두둑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왠지 기분 나쁘다.
"후-우-"
강변에는 이제 인적이 거의 없다. 차가운 바람살 아래 새벼녘 늦은 시간까지 버티고 있는 것은 저 다리 밑에 자리하여 규칙적으로 흔들림을 반복하고 있는 차들 뿐.
난간 밑 흐르는 흑빛의 강물을 바라보며 소주병을 들어 올린다.
찌르르- 하며 넘어가는 소주 한 모금에 한숨 한 번.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충분히 만끽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한 모금.
저어기 강 건너 빛나는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한 모금.
내가 살던 오피스텔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한 모금.
다시 한 모금. 어라? 벌써 다 마셨나?
매일같이 소주를 마셔서인지 겨우 한 병을 가지고는 취기가 돌지 않는다.
다리 밑으로 걸음을 옮긴다. 잔디 쪽으로 가 보니 조금 전 예술을 하시던 덩치 큰 양반 한 분이 잠들어 있다. 그 분 주위 풀밭에 빈 소주 댓병이 하나 굴러다니는 것을 보아하니 술에 취해 잠든듯 싶다. 나는 지금이 기회다 싶어 그 분 옆에 있는 비닐 봉다리 하나를 소리 없이 챙기고선 깨름발로 도망질을 하였다.
숨을 헐떡이며 다리 위 제 자리로 다시 돌아온 나는, 조금 묵직한 그 봉투를 까보았다. 안에는 식어버린 핫바 하나와 소주 댓병 하나가 들어 있었다.
아쉬우나마 핫바를 까서 두 입만에 꿀꺽 삼켜 넘기고선 가슴을 쳤다. 물 대신 댓병을 들어올려 입에 쳐 넣는다. 잘 들어가지 않는 그 쓴 싸구려 알콜을 억지로 위장에 들이 붓는다.
마침내 기다리던 천상으로의 문이 열린 것이 분명하다. 어느덧 주위에는 희미하니 새하얀 안개가 짙게 끼었다. 시야가 사방으로 흔들리는 것을 보니 틀림없다. 망가진 위장이 울컥 하고 성을 내려는 것을 겨우 막아내었다. 어렵게 얻은 기회를 잃을 수는 없는 탓이다.
그대로 난간에 붙어 팔을 밀었다 당겨본다.
"하나아-두우우울-"
"하나아-두우우울-"
구령에 맞춰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하나아-두우우울-"
"어어---억!"
몇 번이고 몸을 흔들던 나는 힘을 잃고 난간에 기대고 말았다. 그리곤, 그대로 몸이 기우뚱 하고 기울며 난간 앞으로 넘어간다.
귀에 새찬 바람 소리가 울려온다. 강물이 방울방울 작게 파도치는 소리도 가까와 온다. 그토록 바라던 천상으로의 입구. 이곳을 넘으면 필시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으리라. 수천억에 달하는 부채와 그 이자. 그리고 사기죄. 신불자로써의 불명예. 학창시절 단 한번도 도움을 주지도 않은 주제에 내가 맡겨놓은 부동산을 몰래 매도하고 도망친 부모새끼. 내가 한창 잘 나갈 때에 매일같이 찾아와 밥 한끼 하자며 매달리던 고향 친구들. 내가 추락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연락을 끊어버린 그들. 내가 어려울 때에 단 한번 도와주지 않던 수많은 관계인들. 내가 얻을 수 있었던 수천억의 돈과. 명예. 명성. 부. 여자. 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나의 옛 자리.
이제는 모두 다 잊을 수 있다. 잊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을 잊고. 새로 시작하던지 아니면 그대로 끝내던지 하자.
나는 '풍덩' 하는 소리를 듣고는 밀려드는 무기력함과 함께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단편소설 이카루스 제 1부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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