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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졸업생(공기업)의 조바심과 자기혐오

세학 2021. 7. 1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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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화로운 가정에서 자랐다.

집안의 큰 시련이 없고 도미노피자를 매일 먹을 수는 없었지만 피자☆, ☆피자는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정도의 가정환경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은 나의 교육에 관심이 많으셔서 강요하지는 않으셨지만 주변에서 하는 건 다 시켜주시고 내 재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밑바당을 충분히 제공해 주셨다. 피아노, 미술학원, 발레, 태권도 등 다 해보았지만 그 무엇도 내가 다른 또래보다 유별나게 잘하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공부는 약간 달랐다. 그 나이 때는 보통 공부를 싫어해서 안한다. 그래서 공부를 조금 하는 나는 다른 친구들 보다 성적이 높았다. 거기서 자신감이 생기고 스스로 공부하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 게다가 친절한 우리 아빠는 문제집을 풀면 아빠가 직접 오답노트를 만들어 주셨다. 당연히 난이도 극하인 초등학교 공부를 잘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습관은 중학교 때에도 이어졌다. 딱 한 가지 초등학교 때와 다른 점은 공부 빼고 다른 활동을 거의 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게 최고라는 주위 어른들의 말 , 그리고 공부를 잘하는 나에게 매일 쏟아지는 칭찬이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하게 만들고 공부만 잘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늘 전교 1-2등을 앞다투며 공부했다. 꿈도 없었다. 좋은 대학에 가면 그냥 성공하고 끝나는 것인 줄 알았다.

 

대학원서를 쓸 때 이미 부모님은 내가 공부밖에 잘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보고 전문직을 하거나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라고 누누히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빠가 나를 공부밖에 잘하는 것이 없는 자식으로 생각하는게 너무 싫었고 공부말고도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싶고 반항하고 싶었다.

 

그리고 원하는 과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일단 스카이에 들어갔다. 좋은 대학에 들어왔으니 뭐라도 되겠지 싶었다. 여태껏 놀지 못한 보상심리로 매일 놀았다. 그리고 동기들과의 대화 속에서 나의 부족함을 철저히 느끼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대학 동기들은 집이 꾀나 잘살거나, 특목고 출신, 아니면 해외파였다. 지방에서 공부 좀 잘해서 올라온 나같은 애랑은 급이 약간 다르게 느껴졌다. 물론 이건 나의 열등감일 수 있다. 그래도 술마시고 놀때만큼은 그런생각들이 잊혀졌다. 일주일에 4-5번은 술마시고, 전공 외에 다른 공부는 처다보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는 벼락치기하는 스타일은 아니여서 꾸준히 1시간은 공부했던 것 같다. 술마시고 놀기만 했던 것도, 다른 걸 도전했을 때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커서 아무런 리스크 없이 술먹고 노는 것을 택했던 것 같다. 다양한 경험을 만드는 대신 , 얇고 넓은 우정만 만들었다. 돈도 정말 많이썼다. 어학연수도 갔다오고 다른 전공을 복수전공하기도 했다. 어학연수의 결과는 가벼운 안부만 전하는 수준의 외국어 획득이었고, 복수전공의 결과는 아는 척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이었다.

그리고 대학 졸업시즌쯤.. 나는 잘하는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학자금 대출은 거의 오천만원, 일년에 나에게 부모님이 붙여준 용돈은 이천만원 , 근 오년간 나는 일억을 썼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벌지 못하면서.

잘하는게 아무것도 없는 나는 초봉 삼천대의 공기업에 들어왔다. 들어오니 고졸채용으로 19살에 들어와서 이미 나보다 오년 빠른 대리님들도 꽤 있었다.

 

요즘 자기 혐오가 심하게 밀려온다. 그래서 주식이든 코인이든 부동산이든 닥치는대로 공부 중. 하지만 자기혐오로 시작한 공부는 성급한 투자만 만들고 만다.

게으른 욕심쟁이로 살아온 나였고 아직까지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