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은 온돌로 난방을 하는 국가 였음.
2. 온돌 난방은 마른 나무인 장작을 땔감으로 사용해서 나무 소비가 엄청난 난방방식 이었음.
조선 문화의 ‘뿌리’는 땔감 마련을 위해 전국의 산을 민둥산으로 만들어버린 국토 황폐화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때때로 외국인들은 뜨끈한 방 안에서 등을 지지는 조선인을 보며 ‘게으르고 태평스럽다’고 평하기도 했다.
3. 한반도 기후도 나무가 크는데 장애가 됨
4. 한반도는 가을부터 봄까지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어서, 수시로 일어나는 산불에 산이 홀라당 타버리는 일이 계속 생김
5. 한국의 난방 방식은 변함이 없어서 해방 이후에도 지리산과 개마고원같이 사람이 들어가기 힘든 지역을 제외하고는 한반도에 제대로된 숲이 사라져 갔음
6. 6.25전쟁이 터지자 그나마 남아있는 산림도 파괴되어버려 당시 유엔 보고서는 한국의 산림은 복구될 수 없다고 보고하였음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01204/33063184/1
그러나 이 조선 문화의 ‘뿌리’는 땔감 마련을 위해 전국의 산을 민둥산으로 만들어버린 국토 황폐화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때때로 외국인들은 뜨끈한 방 안에서 등을 지지는 조선인을 보며 ‘게으르고 태평스럽다’고 평하기도 했다.
https://theme.archives.go.kr//next/forest/outline/greenKept.do
일제 말기부터 시작된 전쟁물자 조달, 해방 후의 인구증가, 6.25전쟁 그리고 전후복구를 위한 자재수요의 증가, 여기에 국가의 산림관리 기능 실종까지 가세하여 산림자원이 더욱 황폐화의 길을 걸었다. 특히 1940년대와 1950년대에는 임산연료 이외에는 대체연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막대한 양의 나무를 소비했던 우리나라 특유의 온돌문화는 민둥산을 만들어내는 주범이 되었다.
7. 당시 월드뱅크는 개발도상국들에게 나무를 심는 자금을 지원했었음.
8. 하지만, 개도국들은 나무를 심는 자금을 돈으로 주면 삥땅을 처먹어버리고, 돈 대신 묘목으로 주면 대충 심고 관리를 안해 나무가 죽지읺고 뿌리를 내리는 활착율이 10%도 안나오는 상황이었음.
9. 625전쟁으로 산림이 폐허가 된 한국에도 월드뱅크의 지원자금이 나옴.
10. 처음에 한국도 삥땅 의혹을 받았음.
11. 월드뱅크의 식목 지원자금으로 묘목을 사는게 아니라 석탄과 시멘트 탄광을 개발한 것임
12. 월드뱅크가 삥땅이라고 ㅈㄹ했지만, 한국의 설명을 듣고는 납득을 해버림.
13. 장작으로 난방을 하고 나무로 집을 짓는 한국에 나무를 심기만 해서는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땔감이나 기둥이 된다.나무대신 땔감과 건출자재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을 먼저 제공해 줘야 한다는 논리 였음.
14. 탄광들이 가동되기 시작하자 , 연탄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목재 가옥은 시멘트 양옥으로 대체되기 시작함.
https://theme.archives.go.kr//next/koreaOfRecord/forest.do
그러다가 1960년대 초부터 ‘산림녹화운동’이란 말이 나왔고, 당시 도벌과 밀수, 마약과 깡패를 4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철퇴를 내리기 시작했다. 산에서 나무를 베기만 하면 누구든 엄벌에 처한다는 방침을 실행에 옮겼다. 1961년에는 「산림보호법」을 공포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순전히 땔감을 위한 연료림을 조성하는 한편 탄광을 개발해 석탄을 캐냈다.
15. 두번째 한 일은 화전민을 없애는 것이었음.
16. 그나마 나무들이 있는 깊은 숲속에는 화전민들이 일부러 불을 질러 나무를 태워 없애고, 그 자리에 농사를 지어 먹고살고 있었음.
17. 화전민들을 산 밑으로 이주시킴.
18. 화전민들에게도 있는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열을 자극하고, 먹고 살 일거리를 마련해 줌.
19. 어린 자식들까지 교육도 안시키고 화전민으로 키울거냐는 말이 화전민들에게 먹힘.
20. 화전민 정착촌을 근사한 양옥으로 지어주고, 그 곳에 학교를 만들어 줌.
21. 화전민 여자는 국가가 운영하는 묘목 키우는 농장에 일꾼으로 고용했고, 남자는 벌을 치는 양봉을 할 수 있게 지원했으며, 산에 있고 싶으면 산을 지키는 산지기로 채용해주고 임금을 줌.
22. 도시에 살고싶다는 화전민이 있으면, 환경미화원으로 고용해서 먹고 살 거리를 마련해주며 화전민을 줄여나감.
23. 당시 숲이 많은 강원도에만 3만명의 화전민이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을 이렇게 정리함.
https://theme.archives.go.kr/next/forest/project/burnField.do
화전민을 그대로 방치하면 산림보호정책은 물론 국토보전 또는 국가안보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 정부는 임산자원을 보전하는 한편 화전민의 생활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시책으로서 1965년부터 화전민 이전사업에 착수하여 1965년에 3,000호, 1966년에 1,800호를 이주 정착시켰다. 정부는 이 사업을 통하여 약 4,300ha의 화전을 정리하여 산림을 복구시켰다. 또한 화전민에 대해서는 주택 건축비를 보조하고 1가구당 4,500평의 미개간지를 주어 개간을 지원하는 등 안정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24. 이렇게 사전정비를 한 후 나무를 심기 시작함.
24. 이렇게 사전정비를 한 후 나무를 심기 시작함.
25. 공무원들을 활용했음.
26. 당시에도 공무원들은 해당 지역 출신들이 읍사무소, 면사무소를 장악하고 있어 묘목을 주고 나무를 심으라고 하면 민관이 한통속이 되어 제대로 정부 지시가 작동이 안되었음.
27. 교차 검사가 신의 한수 였음.
28. 경상도 공무원은 전라도로, 전라도 공무원은 경상도로 보내는등 타 지역으로 보내서 교차 검사를 하게 함.
29. 여기에 공무원들간에 경쟁을 붙임.
30. 묘목이 심어서 죽지않고 제대로 자라나는 활착율이 높은 지역의 공무원들에게는 특진과 성과급을 줬고, 낮은 지역의 공무원들은 성과평가를 까버림.
30. 자기가 속한 지자체가 성과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는 타지역 점수를 까내려야 함. 어설프게 술한잔 접대받고 타지역 점수를 잘 주면 자기 조직 평가가 망가지기때문에 공무원들이 눈에 불을 킴.
31. 이렇게 깐깐하게 검사를 하다보니, 활착율 100%라는 숫자가 나옴.
32. 월드뱅크는 활착율 100%라는 숫자를 믿지 않았음. 개도국들 평균 활착율이 10%도 안나오는데, 묘목 하나도 안죽이고 100% 다 키운다는 활착율은 사기라고 평가함.
33. 그런데 활착율 100%는 사실이었음.
34. 묘목을 공급할때 이동 과정이나 심는 과정에서 묘목이 죽는것을 감안해서 110%를 보통 공급했음.
35. 곰무원들은 110%의 묘목을 받으면 100%를 일단 지정된 장소에 심고, 남은 10%를 다른 곳에 심어서 키움.
36. 타지역 공무원들이 활착율을 점검하러 오는 시기가 되면, 나무를 심은곳에 다시 가서 말라죽거나 비실비실하는 나무가 있으면 딴곳에 짱박아 심은 나무로 교체를 해버림.
37. 해픙과 돌산으로 나무가 자랄수 없는곳으로 간주받던 포항시까지 녹화사업이 완료될 정도였음.
https://theme.archives.go.kr/next/forest/scene/greenCareOutline.do
- - 한그루 한그루 전수조사
- - 새마을 지도자, 이장, 산림계장, 청년회 등 다수 주민 참여
- - 관계공무원 및 주민 대상 교육 실시
- - 검목 종료 후 마을 및 읍면 기관단위 평가회 개최
https://theme.archives.go.kr//next/forest/scene/greenCareModel.do
https://theme.archives.go.kr/next/forest/scene/greenCareAdmirable.do
38. 포항 영일구의 경우 흙도 없이 암반층만 노출된 상태로 풀도 자라기 힘든 지역임. 이 가파른 암반층에 허리에 줄을 묶고 인부들이 올라가서 도랑을 파고 물을 부어 퇴적암반이 풍화되게 한 뒤 거름을 섞어 나무를 심고 가물면 물을 길어다 주고 매년 비료를 주는 생고생 끝에 산림이 복원됨
39. 당시 아카시나무 같은 외래종을 심어서 욕을 먹었으나, 아까시나무는 수명이 짧은 나무라 산림환경이 조성된후 자연적으로 죽으며 떡갈나무등 활엽수로 대체되고 있는 중임
40. 당시 녹화사업은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산림이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기 위한 과정의 성격으로 당시의 척박한 토질환경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음
41. 60년대에 메마른 토양에서 잘 자라는 큰 키나무는 리기다소나무, 사방오리, 아카시나무 정도밖에 없었고, 아카시나무의 경우 뿌리혹박테리아의 질소고정으로 척박한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나무였음
42. 외래종을 심어 생태계 교란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외래종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말라죽고 자생 활엽수림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자연스럽게 산림 복원이 이뤄지게 됨
43. 최초 계획도 1차는 아카시나무등 생명력이 강한 픔종, 2차는 소나무등 중형목, 3차는 경제성이 좋은 대형종으로 10년씩 3차로 미리 게획된 초장기 프로젝트 였음
https://theme.archives.go.kr/next/forest/policy/primaryGreenPlan.do
이 시기 정부는 1970년대 초부터 실시해 온 새마을 사업과 연계한 치산녹화 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산림청을 종합적 지방행정을 지휘 통솔하는 내무부 소속으로 이관하는 한편, 지방행정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1973년에는 제주도를 제외한 각도에 산림국을 설치하고, 전국 각 군에는 산림과를 설치하는 등 국토녹화 추진에 힘을 더하였다. 더불어 임업요원의 자질향상과 임업기술의 저변확대를 위해 1977년 중앙에 임업연수원을 설립하였고, 1978년 임업기술지도사업을 개시하여 전국의 산림조합에 기술지도원 312명을 배치하였다.
44. 박정희대통령이 2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죽는 바람에 계속 진행이 2차에서 흐지부지 중단되어 현재 산지 대부분이 소나무등 중형목판이 되어버림
45. 선거로 뽑히는 높으신들 눈에는 산림이 제대로 자라나 돈이 되는 시기는 자기 집권시기를 훨씬 지나서 였고, 증형목만 하더라도 산이 파랗게 보이기는 해서 “민둥산도 아닌데 뭐 하러 돈 쓰나”하는 마인드가 된 것임
46. 여튼 1982년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한국은 2차 세계대전이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 라고 보고서를 발간함
https://theme.archives.go.kr//next/forest/policy/secondaryGreenPlan.do
1차 계획에 이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정부의 조림에 대한 홍보강화로 국민식수운동을 정착시켰다. 국민식수기간(3.21~4.20)동안 자율적이고 실질적인 참여체제로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제고시켰으며, 중앙 각 부처, 국영기업체, 지방단위 각급기관, 단체, 마을별로 책임 식재하도록 하였다. 또한 육림을 생활화하기 위하여 11월 첫째주 토요일을 육림의 날로 정하였는데, 이는 모든 국민이 마을과 직장, 가정과 단체, 기관과 학교를 통해 육림사업을 실시하고 육림 성과 이외에도 조림이후의 육림에 대한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894024
https://www.mk.co.kr/news/special-edition/view/2019/06/412762/
우리나라는 울창한 산림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산림 부국이다. 국토의 63.2%(634만㏊)가 산림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핀란드, 일본, 스웨덴에 이어 세계 네 번째 산림국가다. 1982년 식량농업기구(FAO)는 한국을 "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 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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