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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양궁의 시작. 석봉근에 대한 재미있는 글

세학 2021. 8. 17.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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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양궁에 강한 이유를 두고 “역시 동이족의 나라”라든지 “국가 첫 소절부터 ‘하느님이 bow 하사’인 나라”라든지의 드립부터 직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가차 없이 탈락하는 치열하고 오로지 실력 위주인 국대 선발전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제대로 된 양궁 협회때문이라는 합리적인 분석까지 골고루 이야기들이 많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한국 양궁이 왜 강한가에 대해 선수들과 지도자들에게 직접 설문조사한 연구도 있고 그렇다. 그런데 한국 양궁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도 연관 연구로 뜨길래 한 번 보니 이것도 제법 흥미롭더라. 아래는 관련 기사 및 논문을 대강 줄인 것이다.

 

 

한국 양궁은 석봉근이라는 인물에서 출발한다. 1923년생인 그는 양궁 외에도 기계체조, 하이다이빙, 배드민턴 등의 타 종목의 전국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할 만큼 체육에 소질이 있었다. 그렇기에 1948년 국민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음에도 다시 경희대 체대에 입학해 1960년에 졸업, 이후 체육교사로 재직한 것일 테다.

 

 

석봉근 선생이 양궁을 처음 접한 건 1959년 중학교 체육교사로 재직할 당시다. 그는 배드민턴을 가르치기 위해 장비를 구하고자 청계천 고물상을 기웃거리다가 줄도 없는 중고 양궁 활을 발견한다. 어린 시절 일본인들이 화궁(일본 고유의 활)을 갖고 활쏘기를 하는 모습을 굉장히 멋지게 보았던 그는 배드민턴 대신 양궁을 가르치기로 마음먹고 며칠 동안 고물상을 뒤져본 끝에 활뿐만 아니라 화살과 일본어와 영어로 된 양궁 서적도 찾을 수 있었다. 동료 영어 교사의 도움 하에 양궁에 대한 기초 지식을 습득한 그는 재직한 수도여중·고에 양궁부를 만들었다.

 

 

그가 한국 최초로 양궁부를 창설한지 얼마 안 가 1961년 정부가 대한궁도협회에 국제양궁연맹에 가입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당시 아시아에서 국제양궁연맹에 가입한 국가는 대만, 일본, 북한이었으니 다분히 북한을 의식한 지시로 짐작된다. 쨌든 이에 따라 궁도계에서도 가입을 위해 양궁 관련 자료를 모으며 양궁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에 따라 선생 역시 궁도협회와 접촉하게 된다.

 

 

1962년에는 양궁 애호가인 주한미군 밀란 엘로트 중령이 양궁 보급에 힘쓰는 선생의 소식을 듣고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양궁 장비들을 기증한다. 그는 그 장비들을 가지고 대한궁도협회를 방문, 양궁보급에 적극적으로 노력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협회에서도 1963년 11월 규약을 개정하여, 양궁경기규칙을 채택하고 그 후 협회가 주최하는 전국궁도대회에 반드시 양궁대회도 함께 하도록 장려하면서 석봉근의 양궁보급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이후 선생은 양궁 활 제작은 물론 양궁강습회 활동, 선수육성, 대회 개최의 주관, 양궁지도서의 발간, 양궁지도자의 양성 등 양궁발전에 헌신적인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특히 선생은 교사라는 직업에 걸맞게 재직하던 학교마다 양궁부를 창단했다. 성동중·숭인중·서울북중·행당여중·무학여중·서울체고에 양궁부가 창단되어 양궁 1세대를 육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의 대표적 제자로는 한국 양궁 최초로 금메달을 따낸 LA 올림픽 당시 감독이자 현재 대만에서는 양궁 대부로 불리는 김형탁과 런던 올림픽 당시 이탈리아 양궁 대표팀 감독으로 이탈리아에 첫 양궁 금메달을 안겨준 장남 석동은이 있다. 선생 본인도 1983년 아시안컵 양궁 국제 대회에서 감독을 맡아 4개 종목에서 전부 우승을 안겨주었다.

 

또 한국에서 양궁 종목이 처음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한 건 1967년 세계척수장애인 체육대회인데 이때도 선생이 지도코치를 맡았다. 서울 패럴림픽 때도 마찬가지로 감독을 맡아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거머쥐었다. 이때 양궁 종목이 생소한 대중을 위해 자비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물론 지금 한국 양궁의 결실이 어찌 한 개인의 노력이겠나. 현대가의 빵빵한 재정지원도 큰 몫을 했을 테고 여러 사람이 이미 얘기한 대로 실력 중심의 선발제도가 가장 큰 역할을 했을 테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 일본인들이 활쏘는 모습이 멋져 보였던 서른 여섯 체육교사가 배드민턴을 가르치려다가 우연히 낡고 줄도 없는 양궁을 발견한 뒤 평생 열정을 쏟아 부은 스토리 정도는 한 번 알아둬도 괜찮지 않을까. 어디 술자리에서 아는 체하기도 딱 좋은 일화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