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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가와 도시경제학자의 차이

세학 2021. 10. 8.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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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1. 경제학자와 도시계획가: 하나로 융합되어야 할, 도시에 관한 두 가지 시각

 

이 책의 주된 목표는 도시경제학자의 지식과 모델을 규정과 인프라의 설계과 계획에 적용하여 실제적인 도시계획을 개선하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도시 이론을 개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존재하는 도시경제학적 지식을 도시계획 실무에 도입하는 것이 목표이다. 


도시계획은 실습하며 배우는, 체계화되지 못한 기술이다. 도시계획가는 '규범적'이다. 즉, 세대를 거쳐 전래된 경험적 원칙에 주로 근거하는 최선의 전문적 관행에 의거해 결정을 내린다. 도시계획가가 쓰는 표현은 보통 정량적이기보다는 정성적이다. 그들은 '지속 가능한(sustainable)', '살고 싶은(livable)', '압축적인(compact)', '회복탄력성 있는(resilient)', '평등한(equitable)' 같은 형용사로 계획 목표를 기술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성적인 목표를 측정 가능한 지표에 결부시킬 필요는 잘 느끼지 못한다. 정량적 지표가 부재한 이상, 이런 용어가 단지 제안된 도시계획안에 도덕적 우위를 부여하기 위해 붙여진 라벨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반면, 도시경제학은 정량적인 과학이다. 주로 학계에서 개발된 이론과 모델, 경험적 증거에 근거해 있다. 

 

나는 도시경제학의 이론을 도시계획 실무에 적용하면 도시의 생산성과 시민 복지가 대단히 증가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나를 비롯한 소수의 계획가의 실무 경험에서 이와 같은 접근법에서 오는 이득을 관찰했다. 아울러, 도시경제학자가 시청 도시계획과의 일상적 업무에 직접 참여하게 하면 학술 연구를 오늘날의 중요한 도시개발 문제에 집중시키는 추가적인 이점 또한 있을 것이다. 신기술의 적용으로 도시에 관한 새로운 정보원이 다량으로 창출되고 있다. 도시계획과에서 일하는 경제학자는 가용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도시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빠르게 증진시킬 것이며, 시민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현장에서 일하는 도시계획가로서의 나의 개인적 경험과 내가 업무를 하면서 도시경제학자로부터 배운 바에 주로 근거해 있다. 

 

일부 독자는 내가 도시계획 이론에 관한 비평에 별로 지면을 할애하지 않은 점을 애석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나는 학계에서 일하는 도시경제학자를 자주 인용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 분야가 당면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더 유용하기 때문이다. 

 

도시계획 규정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필요하거나 심지어 유해해진 규제를 솎아내기 위해 규제의 여파에 대한 주기적인 감사는 필요하다. 도시계획 규정의 본래 목표는 흔히 잊혀지고, 따라서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워진다. 규정은 거의 도전받지 않는 전통적 지식으로서 세대를 거쳐 전래된다. 그러나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고, 규정, 특히 도시의 규정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변화해야 한다. 

 

최근 어느 보고서에서 하버드대의 저명한 도시경제학자인 Edward Glaeser는 미국의 도시계획 규정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토지 이용 규제만큼 평범한 미국인의 삶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규제도 없을 것이다. 주로 지역 정부가 부과하는 이러한 규제는 주택을 더 비싸게 만들고 미국의 가장 성공적인 도심 지역의 성장을 제한한다. 이와 같은 규제는 사실상 아무런 비용-편익 분석 없이 축적되어 왔다. 

여기서 내가 '규제 완화'를 이념적 독트린으로서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하고자 한다. 일부 도시계획 규정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나는 다만 규정을 주기적으로 감사하여 불필요하거나 해로운 것을 제거하자고 주장할 뿐이다. 

 

나와 도시경제학자의 첫 맛남은 1974년 아이티의 포르토프랭스에서였다. 그때까지 나는 도시계획가로서 수 년간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를 만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 건축 및 도시계획학을 전공할 때 나는 도시는 건물과 마찬가지로 설계할 수 있다고 배웠다. 단지 규모가 다를 뿐이었다. 도시 문제는 좋은 설계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배웠다. 도시경제학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몰랐다. 대부분의 도시계획가와 마찬가지로, 나는 도시경제학자의 업무를 재무분석, 심지어는 회계와도 잘 구분하지 못했다. 2017년에도 경제학과 회계학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도시계획가를 종종 만난다. 그들이 보기에는 경제학자는 도시계획 프로젝트의 비용을 합산하는 사람이며, '좋은 설계'에도 불구하고 비용이 너무 높다고 불평하길 잘 하는 이들이다. 

몇몇 독자는 내가 유달리 무지한 도시계획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나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다: 오히려 나와 같이 잘 모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도시계획가들은 토지 가격이 높다고 흔히 개탄하지만, 투기꾼한테 그 원인을 돌려버리곤 한다. 현재까지도 토지 가격과 임대료를 토지와 건물 바닥 면적의 공급을 연결지어 생각하는 계획가는 소수이다. 도시의 범위를 심히 제한하는 규정(예를 들어, 그린벨트, 용도지역 등)을 설계하는 도시계획가가 그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토지 가격이 상승하는 것에 놀라며, 그들 자신은 책임이 없는 외부 요인의 탓으로 돌리는 까닭은 바로 이것이다. 

 

도시계획가가 자신들이 만든 규정을 적용하려고 하면, 토지 가격이라는 매서운 현실을 마주하게 되곤 한다. 많은 가구가 높은 토지 가격으로 인해 규정된 최소한의 대지 면적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계획가는 토지 가격을 주택 보급을 저해하는 주요 장애물로 간주한다. 정부가 토지 시장을 규준에 근거한 설계로 대체하면, 주택 보급 - 그리고 좋은 도시계획의 시행 전반 - 을 어렵게 하는 중요한 장애가 해소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저소득, 중소득, 고소득 가구 각각에 충분한 양의 토지를 배정할 수 있을 터였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게 대부분의 도시계획 마스터플랜의 본질이다. 

 

설계된 규준이 시장을 대신해 토지를 배분하는, 도시계획가의 이상향은 소련에서는 1922년부터 1991년까지, 중공에서는 1947년부터 2000년 전후까지 존재했다. 나는 토지 시장이 도입되기 이전 중국과 러시아에서 일해 볼 기회가 있었으며, 계획가의 이상향이 엄청나게 낭비적인 유토피아로 변질될 수 있음을 내부에서 확인해볼 수 있었다. 

 

계획경제의 내부적 작동 원리를 관찰하는 건 가격이 자원을 배분하는 데 쓰이지 않을 경우 도시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실시간 실험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도시계획가는 현실 세계에서 실험을 할 기회가 흔치 않다. 시장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 도시를 관찰하는 것은 시장에 관해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도시계획가가 보기에는, 토지 시장의 부재는 시장경제 하의 도시와 중국 도시 간에 토지 이용에 있어 큰 차이를 야기했다. 중국 헌법에 따르면, 토지는 '인민'에게 속하는 것으로 매매할 수 없다. 그러나 토지를 이용할 권한은 규획지정국(規劃地政局)에 의해 기업, 때때로 가구에게 분배되었다. 토지 가격이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활동에 각각 얼만큼의 토지를 배분할 것인지는 건축가와 공학자가 정한 규준에 따라 정해졌다. 

도시계획가와 공학자는 '필요'를 기준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는 데 반해, 도시경제학자는 희소한 자원의 배분을 중심으로 생각하곤 한다. 주거 지역의 최적 밀도에 관해 물어보면, 도시계획가는 보통 특정 숫자, 가령 1 헥타르 당 150명과 같은 답을 내놓을 것이다. 이런 추정치는 어떤 규준에 따라 정해진다. 가령, 최적 규모의 초등학교에 15분 이내에 걸어서 도달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밀도, 또는 15분 간격으로 도착하는 대중교통 버스 네트워크를 최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밀도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같은 질문을 도시경제학자에게 하면, '그때 그때 달라요' 라고 올바른 대답을 할 것이다. 도시계획가는 이런 답을 들으면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당연히 맞을 수 밖에 없는 말이다. 도시의 토지는 희소한 자원이고, 그 가격은 특정 장소에서 그게 얼마나 희소한가를 나타낸다. 따라서, 그 가격에 따라, 토지는 가격에 높은 곳에서는 인색하게 사용되어야 하고, 이는 높은 밀도로 이어진다. 토지 가격이 싼 곳에서는 비교적 아낌없이 사용될 것이며, 이는 낮은 밀도로 이어진다.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최적의 인구 밀도란 없다. 밀도는 토지 소비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설사 같은 지역이라도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여러 변수에 달려 있다. 

시장경제에서 토지 구획의 잠재적인 임대료가 현재보다 높을 경우, 소유자는 토지를 팔거나 더 수익성이 높은 용도로 재개발할 강한 유인을 갖는다. 이런 원리를 통해 저층 건물은 고층 건물이 되고, 창고는 사무용 건물이 된다. 새로운 용도 하에서 높아진 토지 가격에서 오래되어 가치를 상실한 건물을 해체하고 이동하는 비용이 지불된다. 토지 이용의 변화 과정은 토지 가격에 의해 촉발된다. 시장 가격의 역동성은 너무나 강력하여, 계획가는 흔히 토지 시장에 의한 변화 과정을 늦추기 위해 토지 이용 규제를 가하곤 한다. 

계획경제 하에서는 가격 신호가 없으며, 따라서 이미 오래되고 가치가 없는 토지 이용 방식이 아주 오랫동안 실질적으로 남아 있을 확률이 높다. 계획경제에서 토지 용도 변경은 토지 이용권 소유자한테나, 용도 변경을 허가하고 그 비용을 지불할 정부 부처한테나 언제나 뚜렷한 편익 없이 비용만 발생하는 행위이다. 생산 비용이 투입 원가와는 무관하게 중앙정부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나쁜 입지로 인한 생산성 하락도 기업 관리자에게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계획경제 하의 도시의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최신 건물은 언제나 새로 개발된 교외에 위치하고 있다. 교외의 인구 밀도가 높으며, 토지의 가치가 가장 높아야 할 도심지에 가까워지면 밀도가 낮다. 

 

시장경제 하의 도시에서도, 도시계획가는 토지와 바닥 면적을 배분할 때 여전히 가격보다는 규준을 선호한다. 그런 사람들의 시도가 성공한 도시에서는 소련에서 나타났던 것과 유사한 식으로 토지 낭비가 발생할 것이다. 

 

중국은 이제 토지 배분에 시장 메커니즘을 적용하는 것에 찬성하는데, 그 이유는 

 * 토지가 불완전하게, 혹은 부적절하게 이용될 경우 가격을 통해 강한 신호가 전달된다

 * 수요가 높은 지역, 특히 교통망이 잘 연결된 지역에서 토지를 최소한으로만 사용하려는 강한 유인을 제공한다

 * 건축의 기술 혁신을 촉진한다: 토지 가격이 없었다면, 마천루도, 철골 구조도, 엘리베이터도 없었을 것이다

많은 도시계획가, 심지어 서유럽, 북미, 그리고 동아시아의 매우 부유한 도시에 있는 계획가들조차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시장을 무시하는 척 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다. 나는 시장과 도시계획가가 자기네 도시가 너무 밀도가 낮다고 불평하면서 동시에 토지 가격이 너무 높다고 불평하는 것을 들었다. 

 

지난 수 년간 나는 세계 각지에 위치한 도시들의 최신 마스터플랜을 점검해왔다. 그들 중 어느 것도 부동산 시장이나 토지 가격, 교통 비용, 통근 시간, 아니면 기초적인 수요와 공급 개념을 언급하지 않았다. 모두 여러 위치에서 특정한 밀도를 권장했다. 그 밀도는 인구 밀도란 것이 토지와 바닥 면적에 대한 수요와 공급 법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계획가의 설계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인 양 정해졌다. 

 

나는 두 가지 목적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저술했다. 첫째로, 도시경제학자를 만난 적이 없는 도시계획가에게 기초적인 도시경제학적 개념과 그러한 개념이 시청 도시계획과가 마주하는 문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이해시키고자 한다. 둘째로, 도시경제학자들에게 도시계획가와 나란히 최전선에서 일하고자 하는 동기를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이를 통해 도시계획 규정, 인프라, 그리고 도시 개발 전략이 시장과 시의회에 의해 비준된 뒤가 아니라 고안되는 단계에서 경제학적인 지식이 투입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