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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조선백성 수난사

세학 2021. 5. 17.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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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에 적이 도성으로 들어가니 그간 2, 3일 동안은 온 서울의 사녀(士女)들이 다투어 성문을 나가서 스스로 서로 밟아서 죽기도 하고, 혹은 앞뒤에서 서로 잃고 죽기도 했다고 한다. 길에서 들은 말이니 비록 확실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이치가 혹 그럴 것도 같아서 통곡함을 금할 수 없다. 

 

 

 

또 들으니 왜적이 영남 사녀(士女) 중에 그 얼굴이 고운 자를 뽑아서 배 다섯 채에 실어 먼저 저희들 나라로 보내서 머리를 빗고 분 바르고 눈썹을 칠하게 하고, 만일 그렇지 않으면 문득 노하기 때문에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여 억지로 따른다고 한다. 이들은 사실 모두 먼저 간음을 한 여자들이고, 그 나머지는 그 뜻에 만족해하지 않으면 여러 적들이 돌아가면서 간음했다고 하니 더욱 가슴 아프고 참혹한 일이다. 이 말은 현의 복병장(伏兵將) 김성업(金成業)이,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사람에게 친히 들었으니 반드시 헛말이 아닐 것이다.

 

 

 

전일 금산싸움에 한 여인이 역시 왜적에게 포로로 잡혀 창고 속으로 들어갔다가 싸움이 끝난 후에 나와서 살려 달라고 애걸했다. 그가 사는 곳을 묻자 처음에는 숨기고 말하지 않다가 뒤에는 사실대로 말했다 한다


 

본래 성주에 살던 선비의 부인은 흉적이 뜻밖에 마을로 들어오자 그 시어머니와 함께 피해 달아날 때 적에게 잡혀서 여기에 왔는데, 여러 적들이 돌려가면서 간음을 하여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여 죽으려 하나 죽지 못하고 시어머니의 생사도 모른다 한다. 다만 허리에는 찢어진 치마만 걸려 있고 속옷은 없는데 우리 군사들이 치마를 올리고 보니 음문(陰門)이 모두 부어서 걷지도 못 한다 하니 더욱 참혹한 일이다. 


 

 

 

6일에 또 나가 싸우는데, 적이 서울로부터 깃대를 세우고 내려오는 자가 많아서 방어사의 진을 포위하고, 네 명의 적이 앞에서 쇠로 만든 광대의 옷을 입어 기이한 형상과 이상한 복장으로 금부채를 휘두르면서 말을 타고 달려온다. 또 수십 명의 적이 혹은 걷고 혹은 말을 타고서 칼은 빼들고 뒤를 따라 나오니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어지러워져서 여러 장수가 무너져 흩어진다. 이에 적이 뒤따라오면서 어지러이 찍으니 우리 군사는 군의 장비를 버리고, 혹은 옷까지 벗고 달아나서 스스로 서로가 밟아서 죽은 자가 수없이 많았다. 순찰사 이광도 또한 큰 깃대를 버리고 간신히 죽음을 면했을 뿐, 모든 군량과 군기·깃대·북·군마를 모두 버리고 달아나서 이것이 모두 적의 물건이 되었으니 놀라고 가슴 아픔을 이길 수가 없다. 




 

또 17일의 운봉에서 전하는 글에 경상 의병장 전 좌랑(佐郞) 김면(金沔)이 거창 군사 6백여 명을 거느리고 성주 무계진(茂溪津)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적을 맞아 쳐서 배 두 척을 사로잡았는데, 한 배의 적은 거의 다 쏘아 죽였고, 한 배 속에는 모두 궁중의 보물이 실려 있어 심지어 임금이 쓴 글씨도 많이 얻었다고 하니 더욱 몹시 통분한 일이다.



 

 

 

적이 산을 뒤질 적에는 의례 2, 3명을 시켜 높은 봉오리에 올라가기를 들고 소리를 내면 혹 10명이나 혹 15, 6명이 지팡이를 가지고 어지러이 숲을 쳐서 마치 사냥꾼이 꿩을 쫓듯이 하다가 만일 사람의 소리가 없으면 그대로 지나치고, 만일 소리가 있으면 끝내 찾아낸다고 한다. 원중성(元仲成)은 용수암(龍水岩)에 숨었는데 적이 와서 그 산을 뒤지자 등덩굴이 뻑뻑한 곳에 엎드려 숨어서 적이 숲을 치면서 지나가서 간신히 면했다고 하니 위태하고 위태한 일이다. 


 

일찍이 들으니 적들이 높은 봉우리에 올라 포를 쏘면 숲 속에 숨어엎드렸던 자나 어린애나 개나 말도 반드시 놀라 움직였으니, 어린애가 울거나 개가 짖고 말이 울면 그 소리를 찾아 잡으러 온다고 하기 때문이다.


 

 

 

천우는 또 말하기를, 2일에 들으니 적이 이미 

 

한강(漢江)을 건넜다 하므로 삼각산(三角山)으로 피해 달아났는데, 적이 어지러이 숲 속을 찾아서 이 산에 숨어 있던 자들의 부인들은 혹 적에게 잡혀 포로가 되고, 혹은 바위 밑으로 떨어진 자가 그 수를 모른다고 했다. 



 

 

 

적이 달아날 때 옥천군을 불태우고 금산을 향해 돌아갔다 한다. 또 들으니, 금산군 앞에 긴 나무를 벌려 꽂고 우리나라 사람의 머리를 무수히 달아놓았는데 썩어서 뼈까지 다 떨어지고 다만 머리털만 걸려 있고 혹은 망건(網巾)만 있다고 하니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겠다.


 

 

 

일찍 떠나서 전주 땅 신원(新院) 천변에 이르러 아침밥을 먹은 후에 고을 남쪽 정자 앞집에 이르러 자려고 하니, 아직 해가 이르기 때문에 말에게 꼴을 먹여 가지고 성 동쪽을 지나서 보니, 인가가 모두 불타서 참혹하다. 안두원(安斗院)에 도착하니, 좌우의 민가가 불타고 남은 것이 없어서 사람들이 모두 왜막(倭幕)에 들어가 살기 때문에 형세가 잘 수 없다. 

 

 



 다 쇄미록에서 나온 내용인데

 

닥치는대로 죽이고 코베어가던

정유재란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난리도 아님

 

거의 인간이 살면서 겪을 최고치의 고통을 저 당시 사람들은 다 당했다고 봐야...거의 지옥이 따로 없었을듯.....

옆나라 사람같지도 않는 일본놈들 욕해봤자 내 입만 아프고 저렇게 당해놓고도 정신 못차리고 복수는 커녕 계속 외세에 털리기만 하다가 끝에 합병당한 이씨 조선도 대단함

 

이미 고려말부터 인구는 일본이 역전됨.

시기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지형적으로나 보복하기 숩지않음.

 

인구 총생산 평야 화약 모든게 일본보다 못하고 바로 옆에는 중국이 지속적으로 지랄하는데 대체 어떻게?? 전귝민 동원해서 총력 상륙이라도 하고 나라 망하면 됨?

 

뭔소린지...임진왜란은 피해는 컸지만 결국 조선의 승리로 끝났고 복수는 해당 죄업에 참가한 병사들 떼죽음당하는걸로 충분히 갚았는데

 

그리고 이미 끝난전쟁에서 바다건너서 상륙전을 한번 더한다고? 심지어 정권도 바뀌었는데?

 

전쟁사중 아시아쪽 전쟁이 유독 참혹함이 더 강한부분이 있긴 함

 

전혀 ... 30년 전쟁만 봐도 종교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음.

 

암만 짱돌 굴려봐도 30년전쟁은 훈족,몽골 유럽 침공선에서 정리되는데 30년전쟁 하면서 그 땅에 존재하는 모든 씨를 말려버림? 아님 후퇴하면서 자기 국민들을 학살하는게 빈번했음? 아님 인종 융화를 위해 국가주도적인 강간을 시도함?

 

저때도 이미 일본애들은 전국시대식 불문율(저항하다 잡히면 죽인다)을 쓰고 있어서 영남지역 피해가 장난 아니었음.

이런건 페미년들 좀 읽게해라. 니들이 큰소리 치는건 평화로운 시대라 그런거라고.

 

일본은 언제나 역사적으로 악이었는데 피해자 코스프레하고, 만화를 너무 많이 봐서 자신들이 정의의 편이라고 생각하는거 보면 기도 안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