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후기

피에로 이송하 vs 아이언 스파이더 오하라 주리 [블랙컴뱃12] 간단 감상평

세학 2024. 10. 21.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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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 이송하 vs 아이언 스파이더 오하라 주리 [블랙컴뱃12] 간단 감상평
시작하며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쓴다. 격투기 관련 영상은 지속적으로 시청해왔지만 나이가 먹음에 따라, 운동을 그만둔지 오래됨에 따라 과거의 경험과 격렬했던 감정이 희미해져 과거와 같은 수준의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투스포츠는 내가 10년 가량을 바친 부분이고, 비중이 줄어들지언정 영원히 잊혀지지는 않을 분야이며 무엇보다 내 글을 봐주는 감사한 분이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글을 써보기로 했다.

나는 다른 팬들처럼 오하라 주리라는 선수를 참 좋아한다. 오하라주리에게 격투기 선수로써 인류 최상급의 재능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그 부족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패배를 극복해나가는 오하라주리의 인간적인 면모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족한 인프라 상황에서 역경 없는 격투기 선수는 거의 존재하지 않을것이다. 부족한 소득, 소득과 운동간의 기회비용 문제, 불확실한 재능과 미래, 매년 켜켜이 쌓여가는 부상, 실력이 올라올때쯤 되면 슬슬 시작되는 에이징커브 등 여러가지 문제 속에서 다들 힘겹게 운동하고 있는것, 나도 잘 안다. 그럼에도 그 중에서 오하라주리는 그러한 측면이 더욱 강조되는 부분이 있고, 스타일적으로도 조금 험하게 말하자면 전략, 전술적이지 못한 우직한 스타일이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일종의 측은지심마저 느껴지게 한다.
그런고로 나는 오랜만에 쓰는 격투기 리뷰의 첫 글을 다시금 오하라주리의 글로써 채우게 되었다. 스타일적으로, 사람의 선호라는 부분에 있어 편향성이 있으므로 피에로 이송하의 팬들에게는 불편할 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첫 대면. 오하라주리야 애초 피지컬적 파워를 장점으로 하는 선수가 아니지만 이번 경기 역시 그래플링 부문 파워에서 차이가 예상되는 피지컬로 보였다. 과거 진득한 그래플링 수비를 통해 그래플러들의 체력을 소진시켜왔던 오하라주리가 이송하의 그래플링을 전혀 당해내지 못하고 초살당했던 1차전의 전적이 있었기 떄문에 개인적으로는 불안감을 더했던 장면이었다.

이 부분에서 미리 생각했던 부분은 역시 오하라 주리의 필승패턴은 언제나와 같이 그래플러들의 초반 화력을 버텨내고 체력적 우위에 서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의외로 스트라이커적 경향을 가진 선수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기에서 스트라이커적 경기를 했지만 이번 경기만은 그래플러 변태 천국 일본에서의 대다수의 경기와 같이 그래플러 vs 스트라이커적 경향을 보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또한 오하라주리가 택할 전략 또한 언제나와 같을 것이었다.

 

지난 경기에서는 피에로가 먼저 페인트성 긴 펀치를 연달아 던지며 오하라주리를 사이드로 밀어넣었다. 오하라주리는 회피기동이 좋은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그대로 쉽게 사이드에 밀렸다. 물론 전략적으로도 원래 오하라주리는 그래플러를 케이지, 링사이드에서 그래플링에 당해주며 상대 체력을 소진시키는 전략을 쓰기 때문에 그런 경향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경기는 전략과 전술이 옳았든 틀렸든간에 어쩄든 패배했고, 이번 경기에서는 다소 다른 전략을 택한듯 보였다.

 

크게 전진하며 머리박고 투, 뒷발 앞으로 나가며 일종의 투-투 의 변형. 위에서 설명했던 그 패턴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송하의 이런 펀치 테크닉은 프로수준에서 정말 별로라고 생각한다. 만약 상대방에게 카운터 역량이 있다면 된통 당하기 쉬울 정도의 역량이다. 하지만 오하라주리는 카운터타입도 아니고, 피에로 역시 타격가가 아니다. 투-투-를 통해 사이드로 밀어넣기만 하면 된다.

 

지난 경기와 정확히 똑같은 패턴. 투-투- 케이지 몰아넣고 태클. 여기까지는 그래플링 버티기 vs 그래플링 진입이라는 서로의 의도가 경합되지 않는다. 오하라 주리가 태클디펜스에 성공하리라는 전망을 하는 이는 그다지 없다. 진짜 경합지는 그래플링 피니시 가능 여부다.

 

리스트락 이후 백포지션 점유. 여기까지도 지난 경기와 패턴이 똑같다. 오하라주리는 최근 유행하는 엉덩이를 들어주며 상대를 점점 끌어내려 리어네이키드 초크를 피하는 전술을 취했다가 니바변형에 당하고 말았다. 여기까지 불과 30초 가량만에 지난경기와 정확히 거의 동일한 패턴이 형성되었다.

 

지난경기와 같이 오하라주리가 엉덩이를 드는 패턴을 사용하지 않고 웅크리자 피에로가 오하라주리의 중심을 무너트려 강제로 끌어내렸다. 매우 아름다운 테크닉이라 생각했고, 피에로의 그래플링 능력을 수 년 전의 내가 과소평가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포지션은 맞지만 약간 불안한 포지션. 저 상황에서 갑작스레 상체를 돌려 역전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미 길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듯이 금새 락을 걸어버린다.

지난 멘티스 경기와 완벽히 같은 패턴이다. 리어네이키드 초크 위험상황. 하지만 오하라주리는 그 경기와 완벽하게 동일하게 바깥락을 먼저 풀면서 일단 서브미션 위험을 피했다. 하지만 나도 타격가적, 수비적 그래플링을 했던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 백포지션이라는게 정말 징글징글한게, 한 번 뜯어냈다고 해서 끝나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바디락이 걸려있는 상황에서 왼팔, 오른팔을 바꿔가며 리어네이키드 초크 시도는 계속된다.

 

그래플링에 소양이 얕은 나조차도 흥미롭다고, 아름답다고 느낀 장면이었다. 오하라주리가 케이지를 발로 밀어내며 백잡힌 상태를 사이드로 바꿔내자 피에로가 몸을 돌려 풀마운트로 전환하고, 그를 벗어나기 위해 오하라주리가 허리의 탄력을 써서 밀어내고 일어나려 하자 피에로는 그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다시 백포지션으로 전환했다. 만약 내가 오하라주리 입장이었다면 속으로 욕을 했을 것이다. "징글징글하다 xx 진짜..." 

유사패턴은 전부 패스하고, 슬슬 피에로의 파운딩, 4점니킥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당장 빠르게 피니시를 하기보다는 하나씩 쌓아가는 방식으로 전환하자고 생각한게 아닐까. 오하라주리 역시 새로운 기법을 선보이며 오하라주리의 피니시와 백포지션 점유 유지를 막아내려 애쓰고 있다.

 

 

1라운드 종료. 피에로 진영은 1라운드의 압도를 재확인했다.

오하라주리는 마우스피스르 뺴내자 고인 피가 쭈욱 흘러나왔다. 1라운드에 맞은 파운딩 데미지가 의외로 컸던걸까?

1라운드의 내용은 피에로의 그래플링 압도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오하라주리의 대그래플러 필승패턴 역시 1라운드까지는 깨지지 않았다. 2라운드 부터의 전개를 더 지켜봐야 한다.

2라운드 시작부터 오하라주리가 압박하며 볼륨스트라이킹을 시작해보지면 역시나 코너와 모두의 예상대로 뒷손에 맞춘 카운터태클. 오하라주리는 기존의 하프나 백을 고의적으로 내주는 방식을 넘어 기존보다 더욱 적극적인 그래플링 방어에 나선듯 하다.

 

다음으로 타격가들에게서 보기 힘든 아름다운 장면이 나왔다. 백포지션을 뻇길 상황에서 고의적으로 넘어지며 몸을 돌려내 포지션을 회복했다. 그동안 오하라주리가 그래플링 방어 연습을 많이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삐에로 역시 기무라-백포지션으로의 전환 콤비네이션 정말 아름다웠다.

그 이후 1라운드의 백포지션과 유사한 장면이 다시 한 번 이어졌지만 오하라주리가 의외로 백포지션을 오래 내주지 않은 채 일너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이후 이어진 타격전에서도 오하라주리의 특색인 충분한 볼륨스트라이킹을 보여주지 못했다. 분명 카운터태클을 걱정해서 그럴것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굉장히 조악하다고 생각하는 삐에로의 타격을 중간중간 허용하기도 했다. KO 당할 펀치는 절대 아니었지만 타격가 입장에서 저런걸 허용한다고? 라고 생각할만한 펀치들을 계속해서 당하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맥그리거 하빕의 오버핸드 사례에서도 그렇듯이 그래플러링을 걱정하다보면 타격반응이 늦어지는 것은 언제나 있어왔던 일이다. 그러나 단 하나 분명한 점은 1라운드 대비 스탠딩 상황 비중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의 그 장면. 내가 원래 알던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분의 말을 빌리면 닌자초크-길로틴초크의 콤비네이션이라고 한다. 나는 이 장면 역시 굉장히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타격전을 지속할 이유가 없는 피에로의 태클. 예상했다는 듯이 케이지에서 버티면서 초크그립. 초크그립에 효과가 있었는지 피에로는 몸을 돌리며 그립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다스초크와 같은 그립이 전혀 풀리지 않고 지속되었고, 최종적으로는 몸을 일으켜 세워 각을 만드려는 상황에서 길로틴을 아름답게 완성시켜 마무리. 아..... 나는 구식 타격가 유형으로써 높은 수준의 그래플링을 좋아하지도, 잘 알지도 못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피니시였고, 그 과정이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경기가 끝난 뒤의 표정이 너무 웃기다. 너무 좋아서 저런 표정이 나왔을까? 혹은 커리어내내 존재했는지도 모를 서브미션 승리로 인한 고양감?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점은 이 패턴이 우연이 아니라 상대방의 전략전술에 대응한 미리 준비된 패턴이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굉장히 수동적이고, 수비적 그래플링을 통해 상대방의 체력을 소진시킨후 타격전을 이행하는 패턴뿐 아닌, 적극적인 그래플링 교전을 통해 상대방의 체력을 소진시키고, 기회가 오면 서브미션까지도 노려본다는 오하라 주리의 기술적 진화가 너무나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오하라 주리는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는 격투가다. 그 나이에 스타일 변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나 그 경직된 문화사상을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 이 정도의 극적인 그래플링 역량 강화를 성공할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다만 한 가지. 이번 경기에서 오하라주리의 블랙컴뱃 입성 이후 확인된 타격전에서의 약점은 그다지 개선점이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KO율을 높이기 위한 탄력 있는 원투 등 타격기법으로 인한 리스크 증가. 타격력에 비해 상당히 낮은 디펜스 능력, 낮은 타격디펜스 능력을 맷집이나 근성으로 커버하고 있지만 근성이 좋을지언정 턱 자체가 괴물처럼 강해보이지는 않는다는 점, 킥의 활용 중, 하단비율보다 상단비율이 높아 카프킥을 잘 활용하는 현대 MMA 타격추세에 약점을 보일 수 있다는 점 등에 대해서 오하라주리도 한 번 깊게 고민을 해봐야 현재의 챔피언 지위에서 롱런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블랙컴뱃에 베테랑을 포함한 새로운 피들이 계속해 수혈되고 있어서 오하라주리의 장기집권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 물론 인간적으로 굉장히 멋지고 감동있는 경기를 하는 선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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